한해 군산지역만 해도 수백여회나 치르는 각종 행사에 주최측은 의전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원만한 행사진행을 어렵게 만든다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대부분의 행사에는 각급 기관의 대표 등 초청인사가 참석하기 마련이나 이들을 맞이해야 하는 주최측은 의전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고 의전문제로 행사전체가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최근 군산시민의 날을 맞이하여 각 단체들에 의해 많은 행사가 치러졌다. 지난 2일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는 처음 준비한 단상의자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상으로 올라가 사람이 올라올 때마다 급히 의자를 날라 자리를 만들기에 바빴다. 또한 행사장에 늦게 도착해 단상을 오르지 못한 일부 인사는 아예 되돌아가는 웃지 못할 일들이 연출됐다. 행사를 치른 각 단체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행사자체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앞서 의전을 어떻게 아무 탈없이 치르느냐에 신경이 쓰인다고 토로하고 있다. K단체 대표는 "먼저 초대할 때 하나같이 하는 말이 누가 참석하느냐를 묻는다. 그 양반이 참석하면 나도 참석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참석여부를 정치적이고 사교적인 목적으로만 여기는 기관장들이 많다"고 말하면서 얼굴 도장찍기나 줄서기 관행이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초대된 고위 인사의 참석여부가 미지수라 누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게다가 늦게 도착해 단하에 앉아 있는 것을 큰 모멸감을 느끼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다. 단상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우리 풍토로서는 갑자기 나타날 경우 급히 의자를 구해 허겁지겁 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그 자리 옆에 누가 앉았으며, 서열이 몇번째냐에 따라 심지어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등 분위기를 망치며 행사전체를 폄하하기도 한다. 행사의 사후평가는 행사의 내용이 아니라 초청인사들의 의전점수에 따라 완전히 뒤바꿔진다. 쓸데없이 초청인사 위주로 비위를 맞추는 형식에 치우치다보니 행사의 질이 전체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초대된 기관장을 소개하는 순서에도 초미의 관심과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누가 먼저 호명되느냐, 누구 앞·뒤에 부르느냐를 놓고 심리적으로 크게 긴장하고 자기 체면에 스스로 사활을 건다. 왜 이리 우리는 의전에 있어서 자신을 스스로 긴장상태로 몰아가는 것일까? 군산대 조수근 교수는 "서구인은 수평적인 의식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수직적인 의식구조를 갖고 모든 사물을 수직적, 종적, 서열적으로 파악하는 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이런 의식이 사회의 한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형식에 너무 치우치는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해비타트 본부가 주관한 군산의 무주택자들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서 망치를 들고 귀국한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어떤 수행원이나 의전도 없이 군산에 도착했었다. 행사장의 제일 앞자리는 혜택을 받는 무주택자들, 그 다음은 자원봉사자, 그 뒤에는 단체 이사들 그리고 취재진, 그 다음이 참석한 기관장들 순 이었다. 그것도 넥타이차림은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바람에 행사에 참석했다가 무안함에 슬그머니 돌아간 기관장도 많았다. 해비타트의 행사는 군더더기 형식보다 행사의 내용에 충실한 감동적인 진행이었다는 교훈을 남겨준 바 있다. 이러한 병폐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급 인사들부터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전통적인 의식의 폐해에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노력과 함께 글로벌시대에 걸 맞는 성숙된 의식과 행동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