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백아(伯牙)라는 거문고 명인이 있었다. 백아가 높은 산을 연상하면서 거문고를 타면 친구인 종자기(種子期)는 그 곡을 알아듣고는 '웅장한 것이 태산과 같다'라며 칭찬했다. 백아가 큰 강을 생각하고 연주하면 종자기는 '양자강과 황하가 흘러넘치고 있구먼'하며 감탄했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고 친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어느날 갑자기 종자기가 세상을 떠났다. 백아는 '내 거문고의 음색을 알아주는 사람이 이제 없다'며 거문고를 부숴 버리고 두 번 다시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 이를 백아절현(伯牙絶鉉)이라 하여 자신을 알아주던 친우를 잃은 슬픔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상대를 잘 이해하고 위해주는 귀를 열어 둘 때만이 진정한 벗을 사귈 수 있을 것이다. ▼한(漢)나라 유방(劉邦)이 진(秦)나라 수도를 정복했다. 유방은 보물과 미녀들을 보고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신하 장량(張良)이 고했다. '황제가 향락에 빠진다면 악명 높은 하(夏)나라 왕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되 행실에 이롭고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다고 합니다.' 유방은 두말 없이 그 궁궐을 나왔다 . 유방은 귀를 열어두었기에 백성을 위한 큰 정치를 펼 수 있었다. ▼귀만큼 유순하고 순종적인 것이 있을까. 사람이 억지로 막지 않는 이상 늘 우직하게 열어 놓아 혹사당한다. 요즘처럼 각종 의혹과 미움들이 난무할 때 귀는 가장 고통스럽다. 반가운 소리라곤 들리지 않는 요즘엔 귀가 없는 게 낫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큰 입으로 좋은 말만 많이 해 귀를 좀 편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