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새를 기러기라고 해서 손색이 없다. 기러기를 보며 귀향과 소식을 그리워한 시가 유독 많다. 두보(杜甫) 소식(蘇軾)의 시에서부터 우리의 가사, 가곡, 민요에도 스며 있다. 기러기는 장유유서의 질서와 부부의 정이 각별한 속성이 있다고 한다. 전통 혼례 때 나무 기러기를 상징물로 사용한 것이 그 예다. 부부가 음양에 순응해 백년해로하고 좋은 금실을 기원하는 상징이었다. 이 기러기를 들고 가는 사람을 '기럭아비'라고 했다. ▼조선시대 빙허각(憑虛閣) 이(李)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는 기러기를 믿음, 예절, 정조, 의리, 지혜가 있는 새로 비유했다. 추우면 북에서 남에 이르고 더우면 남에서 북으로 돌아가니 신(信)이요, 날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니 예(禮)다.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찾지 않으니 절(節)이고 밤이 되면 무리를 지어 자되 꼭 한 마리가 경계를 서니 의(義)이며 낮이면 갈대를 머금어 주살을 피하는 지(知)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과 인연의 끈을 한껏 당겨온 기러기 예찬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기러기의 속성을 따서 자식을 조기유학 보내고 홀로 사는 직장인을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 2∼3년 전만 해도 대기업체 임원이나 변호사 의사 등 비교적 풍족한 전문직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일반 기업의 중견간부 교사들까지 '기러기 아빠' 대열에 합류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아내가 한번씩 왔다 갔다 하는 '반 기러기 가족'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게다. 그래서 '기러기 아빠'를 위한 세탁 파출부업 식당 등 '기러기 산업'도 반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러기의 속성을 잃은 '기러기 아빠'다. 기러기는 대열을 이탈하지 않는다. 기러기 떼가 V자형으로 날면 혼자 날 때보다 71%를 더 멀리 날 수 있다고 한다. 앞선 기러기 떼의 날갯짓으로 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선 기러기가 지치면 뒤에 있던 기러기가 선두에 나선다. 무리와 헤어지기보다 고통을 서로 보전하며 사는 것이 기러기의 생태다. 가족 없는 외기러기 신세에 동정은 가지만 국적 없는 교육, 자식 교육을 위해 못할 일이 없다는 세태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