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cunning)은 '교활한''교묘한' 등의 뜻을 지닌 영어 단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험 때의 부정행위로 통용되고 있다. 커닝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됐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발견된 깨알같은 글씨의 작은 책 두 권이 명나라 때의 커닝 페이퍼로 밝혀진 적이 있다. 삼강오륜을 읊조리던 조선시대 선비들도 과거에서 커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과장(科場)에 책을 감추고 들어가는 협서(挾書),남의 글을 엿보고 답안을 적는 차술(借述),답안지를 대신 작성하는 대술(代述) 등에 형을 가했다니 당시의 커닝 실태를 짐작케 한다. ▼기성세대들 중에는 학창시절 한번쯤 커닝을 한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정몽준 의원도 대학시절 커닝을 하다 정학 당한 것을 시인한 적이 있다. 지난날 커닝은 남의 답안지를 보거나 답이 적힌 쪽지를 건네주는 고전적 방법이었다. 하지 만 현대적 커닝은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그 방법도 지능화하고 있다. 캠퍼스에 '실력은 선택, 커닝은 필수'라거나 '창피는 순간,학점은 영원'등의 구호가 나온 지 오래됐다는 것은 '양심의 도둑질'이 고질화되고 있음을 말한다. ▼최근 대학가의 커닝이 위험 수위다.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시험 때면 학점을 잘 받으려 사생결단식 커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시험을 치고 먼저 나간 학생이 휴대 전화와 PDA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또한 고해상도 축소복사기나 투명 필름을 이용해 커닝 페이퍼를 만드는 학생들도 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학점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커닝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가 없다'는 '커닝 중독증'대학생들도 나온다니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의 내노라하는 수재들이 모여있다는 서울대조차 시험 때면 커닝으로 비상이 걸린다고 한다. 윤리의식이 낮고 자제력이 약한 학생,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학생이 부정행위를 자주 하기 마련이다. 이들의 57%가 커닝에 대해 양심에 거리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놀랍다. 정의감이 높아야 할 대학생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커닝 망국론'이 나오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