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자본주의의 태동기를 묘사하고 있다. 무역상 안토니오는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살 1파운드'를 떼 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지만 법학박사로 변장한 포샤의 명 판결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모험적인 상선 투자로 부를 축적하면서도 대금업으로 이자를 받아 재산을 증식하는 유대인 샤일록을 못 마땅해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샤일록은 자본주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경제인인 셈이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세 가지는 번민과 불화와 빈 지갑이다. 몸이란 마음에 의존하고, 마음은 돈지갑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현실적인 경제관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는 신용이 어떤 것인지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허생이 서울에서 제일가는 부자 변씨를 찾아가 '만 냥을 꾸어달라'고 하니 변씨는 '그러시오'하며 당장 내주었다. 변씨 집의 자제들이 허생의 외모가 마치 거지같은데 이름조차 묻지 않고 돈을 내준 것을 의아해 하자 변씨는 '남에게 빌리러 오는 자는 신용을 자랑하면서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기 마련인데 저 객은 말이 간단하고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어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왕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는가'라고 답했다. 그후 허생이 이자를 쳐서 10만냥을 갚으려 하자 변씨는 10분의 1만 이자로 받겠다고 했으나 허생은 '나를 장사치로 보느냐'며 가버렸다. 신용을 바탕으로 한 금융업이 뿌리내리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도 신용은 선비의 인격과 같은 것이어서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신용불량자가 252만명을 넘어서 가계 부실화에 대한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무분별한 소비가 가져온 업보(業報)다. 그러나 지금도 '제발 돈 좀 빌려 가라'며 은행과 카드사들의 유혹은 끝이 없으니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