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구 시장에서 12년동안 야채를 팔고 있지만 올해처럼 추운 겨울은 처음입니다.” 이마트에 이어 해태마트 군산마트 등 잇따라 개점해 대형 유통매장 춘추전국시대를 이룬 이 지역에서는 출혈경쟁으로 인해 대형 업체 스스로도 ‘매출이 안 올라 죽을 맛’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 틈새에서 정작 힘든 곳이 바로 지역의 재래상인들이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추운 겨울”을 맞은 재래시장 상인의 고단한 이야기를 구시장에서 야채상을 하는 최연석(53)씨에게 들어본다. 최씨는 지난 90년 기업들이 한창 노사분규를 겪을 때, 1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시장에서 야채상을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그래도 고생을 하면 대가가 있었다. “지금 이곳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상인도 반 이하로 줄어 노점을 꾸리는 사람은 수십명에 불과하고, 시골 할머니들도 30명 정도만 장사를 합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더 힘들어 과연 이곳에서 몇 명이나 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씨의 맞은편에서 채소 함지를 풀어놓고 있는 한 할머니의 경우 7일 아침 “전날 도라지 1000원어치와 고사리 3000원어치밖에 못 팔았다”며 울상인 것을 최씨는 “농담 마시라”며 억지로 웃어 넘겼지만 이처럼 하루종일 추위에 나앉아 있어도 교통비와 밥값 벌이가 안되는 것이 요즘의 재래시장이라고 한다. “저도 장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다른 배운 게 없으니 이 나이에 쉽게 그만두지도 못합니다. 누가 한 달에 월급 100만원만 준다면 제 화물차를 제공해서라도 이 일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최씨는 IMF외환위기 때도 지금보다는 나았다고 한다. 4∼5년전만해도 장사가 잘 돼 큰돈은 못 벌었지만 별 걱정 없이 애들 공부시키고 살 정도는 됐다. 5년 전에는 한 달에 200여 만원씩 벌 정도로 장사가 잘돼 아내와 함께 매달렸지만 지금은 최씨 혼자 시장에 나와 있다. 한달 100만원도 안 되는 벌이를 위해 두 사람이 고생할 필요 없다 싶기도 하고, 한사람으로는 일손이 달릴 만큼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인 아들과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두고 있는 최씨는 ‘요즘은 밥 먹고살기도 어려워’ 교육비가 한꺼번에 지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들을 곧 군대에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최씨가 집에서 나오는 시각은 오전 6시. 청과시장과 어시장 등에 물건을 하러 갔다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7∼8시까지 바람하나 가릴 곳 없는 시장통에 앉아 있어야 한다. 지난 8월처럼 그나마 비가 많이 오면 장사는 공치는 거지만, 추적추적 조금씩 내리는 비에는 혹시나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우산을 펴고 시장에 나와 앉아있어야 하는 게 재래시장이다. “손님이 기껏 시장을 찾았는데 비가 온다고 상인들이 없다면 손님은 그 즉시 대형 마트로 발길을 돌릴 건 뻔한 거 아닙니까. 잘못하다가는 그 손님을 한번 뺏기는 게 아니라 영원히 뺏길 수도 있기 때문에 장사가 되든 안되든, 날씨가 맑든 흐리든 시장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게 지금 재래시장 상인들의 처지입니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목을 죄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빚이라고 한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해 올 때 보통 외상을 지는데 장사가 제대로 안돼 그날 벌이를 그날 쓰다보니 갚을 길이 없어진 것이다. 장사를 그만두면 당장 그 외상값을 다 갚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장사판을 벌이고, 외상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을 재래시장 상인들 대부분이 겪고 있다고 최씨는 털어놓았다.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겁니다. 물건이 안 좋거나 가격이 비싸서 손님이 안 오는 거라면 방법은 간단하지만 그렇지도 않거든요.” 요즘 1만원짜리 한 장 들고 장을 보러 나가서 재래시장 만큼 푸짐하게 살 수 있는 곳도 없다.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바구니에 몇 개만 담아도 몇만원은 훌쩍 넘기지만 최씨 등 재래시장 상인들은 아직 고구마 2000원어치, 고추 500원어치를 팔고 있었다. 최씨는 이제 군산에 들어서는 대형 할인점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못해 체념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의 경우 잘 갖춰진 주차시설에 비를 맞지 않고도 쇼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재래 상권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매스컴에서 간혹 이야기하는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도 기대할 게 못된다고 시장 상인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대책들을 체감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막상 ‘활성화’ 하겠다고 시장을 찾는 사람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최씨는 포기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재래시장은 모두 없어질 겁니다. 정말이지 가장의 벌 이가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올 겨울을 어떻게 넘길까 싶어요. 이미 시장규모도, 가져오는 물건 양도, 수입도, 상인수도 모두 4∼5년전의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내년이 되면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재래시장의 서민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것만 같습니다.”라며 말문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