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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독립운동가]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3-01-04 00:00:00 2003.01.04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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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선생은 1884년 5월에 서울에서 태어나 대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2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고 1914년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당시 해외 한인사회의 최고 통일기관이었던 대한인국민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선생은 노동에 종사하면서 대한인국민회에 독립자금을 의연하였고 1918년 4월에는 김원용 등 30여 명을 규합하여 북미지방총회 산하에 푸에블로지방회와 와이오밍지방회를 설립하고 서기와 총무로 활동하였다. 1919년에 3·1운동이 발발하자 선생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로부터 중서부지역의 특파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12월에 선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살음·이범영·이순기 등과 함께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벌이던 조소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고 신임장과 함께 2,500달러를 송금하였다. 1920년 5월 선생은 독립자금 후원을 위해 1920년 5월 리들리에서 김형순과 함께 김형제상회(Kim Brothers Company)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31년 11월 대한인국민회의 승인으로 미주한인연합회를 조직하여 재무로 선임된 선생은 미주와 멕시코, 쿠바의 한인들에게 인구세를 모집하여 임시정부로 송금하였는데, 이승만계의 동지회가 가입하면서 미주한인연합회는 북미지역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단체로 성장하였다. 1941년 4월 하와이에서 해외한족대회가 개최되어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조직되고 12월에 일본군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선생은 집행부의 위원장으로서 로스앤젤레스에 한인국방경위대의 창설을 주도하고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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