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유럽사회에서 감자는 서민들에게 희망의 양식이었다. 감자는 산업혁명 시기 값싼 노동력의 대량 공급에도 기여했다. 1800년대 중반 여러 지역에 감자병이 번지면서 인구가 크게 줄었으며, 아일랜드에서는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는 이주행렬이 이어져 인구의 4분의 1이 감소하기도 했다. 인구와 식량의 불균형이 빚어낸 결과였다. 14세기 중반에는 흑사병과 100년 전쟁 ,흉작이 겹쳐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줄어든 적도 있다. 오늘날 식량과 경제문제로 인구의 급격한 증감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인구수가 국력을 나타낸 적도 있지만,과잉인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 국가마다 적정인구 유지를 위해 다양한 인구조절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의 마가렛 생어가 1914년 여성의 출산과 육아에서의 해방을 위해 제창한 산아제한의 개념에 양육능력과 사회적 책임을 가미해 가족계획정책이 나왔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구미 각국에서 과도한 산아제한으로 인구감소의 위험성이 제기되자 양육능력만큼 아이를 갖자는 분위기는 확산됐다.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은 자녀수가 6명 수준이던 지난 1962년 시작됐다. 80년대까지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이 늘 따라다녔다. 남아선호 때문에 성비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구호가 등장했다. 가족계획의 효과로 8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이 감소해 1996년에는 산아제한정책이 폐기됐지만 출산율 저하는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89년 출산율 '1.57쇼크'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99년부터는 '신 엔젤플랜'이라는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이와 달리 지난해 1가구 1자녀 갖기를 공식 법제화함으로써 여전히 과잉인구 해소에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출산율이 1.3(2001년)으로 떨어진 것을 두고 출산파업(베이비 스트라이크)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출산파업은 원래 여권신장을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어서 육아·보육·취업 문제,사회적 지위의 변화 등 사회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출산율 저하현상을 출산파업 행위의 결과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