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일상생활에 필요한 ‘만물상’의 역할을 한 동네 슈퍼들이 할인점, 대형 마트 등 유통업체들의 대거 지역 진출로 직격탄을 맞아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동네마다 아주 작은 규모부터 제법 큰 평수까지 다양한 슈퍼가 이웃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대형 업체 입점에 따른 ‘무더기 쇼핑’ 확산으로 설 땅을 잃고 있다. 여기에다 공장 직거래 등으로 상품 단가를 대폭 낮춘 대형업체와는 달리 높은 도매가격으로 상품을 구입해 판매해야 하는 동네슈퍼로서는 대형 업체의 세력확장에 대처할 방법도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군산시 조촌동에서 ㄷ슈퍼를 운영하는 백인선(55)씨. 지난 1998년 12월 슈퍼를 인수해 장사를 시작했지만 요즘은 돈만 있다면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언제라도 슈퍼를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슈퍼 장사로는 밥 먹고살기도 힘듭니다. 그냥 40만원 방세 나가는 요량으로 세를 얻어 살면서 장사는 덤이라고 생각하죠.” 동네 슈퍼 경기가 극도로 나빠진 것은 지난해 봄부터로 장사 초기 바로 옆의 주택과 인근 사무실 사람들이 백씨의 가게 단골이었지만 지난해 E마트점이 문을 열자 손님은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웃들이 웬만한 건 모두 대형 할인점에 가서 사는 것 같아요. 이 장사를 안 한다면 저라도 그럴 것 같거든요. 무이자 카드 할부 해주지, 사은품 주지, 어차피 맞벌이가 많아 매일매일 장을 못 보는 가정이 많아 동네 슈퍼에는 대형점에서 잊고 사지 못한 물건 한 두개 사러오는 게 전부죠.” 동네 슈퍼의 생명줄은 뭐니뭐니 해도 ‘담배’라고 한다. 매출의 85%는 담배에서 수입을 올리지만 담배 소비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2번씩 받던 담배도 지난해부터는 1번으로 줄였고, 담배값 인상과 매입 수량 감소까지 고려하면 3분의 2는 감소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1번씩 대리점에서 받던 과자도 지난해부터는 한 달에 1번 받아도 남는다고 백씨는 한숨을 토했다. 동네슈퍼의 목을 죄는 것 중의 하나가 도매 가격의 차이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대량 구매와 직거래로 상품 매입 단가를 대폭 낮춰 ‘싸게 팔아도’ 어느 정도 남는 장사이지만 동네슈퍼는 그러한 가격을 따라갈 수가 없다. “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에 80원 정도 남지만 어쩌다 하나 팔리는 걸 위해 하루종일 냉장고를 돌리는 전기료를 감안하면 손해보는 거죠. 대형 업체와 동네 슈퍼의 매입가격 차이가 얼마나 나는 줄 아세요· 대형 업체에서 초특가 세일하는 걸 사와서 가게에서 파는 게 도매상에서 사는 것 보다 싸요.” 백씨의 남편은 “이 같은 추세라면 동네 슈퍼는 모두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순수한 고객의 입장에서는 깎아주고 끼워주고 싸게 파는 대형 업체가 여러모로 고맙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재래 상권이 고사해 모두 없어지고 나면 그 결과는 모두 ‘시민들의 불편’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가게 손님은 주로 담배를 찾는 손님이거나, 음식을 하다 조미료가 뚝 떨어진 사람, 아이 손 잡고 몇 백원 짜리 과자하나 사러 대형점에 못 가는 사람 등 서민들이 아쉬울 때 찾는 곳이 동네 슈퍼예요. 만일 동네 슈퍼가 없다면 한밤중에 갑자기 아이 분유라도 떨어진다면 어디 가서 사겠습니까·” “어차피 좁은 지역에서는 재래상인이 죽으면 지역 전체가 죽게 됩니다. 당장 동네 슈퍼가 없어지면 사실상 주민들만 불편해 질 것입니다. 세제 혜택 등 서민경제를 위한 제도적인 도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