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노래 가사처럼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이지만 아쉽게도 봄은 갈수록 짧아져, 봄이 왔는가 하면 벌써 저만치 가버리고 만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만개할 즈음이면 불청객 황사가 하늘을 뒤덮어 봄 기분을 망친다. 그러니 얼음장 밑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나, 잔설이 희끗희끗한 가운데 핀 매화를 감상할 줄 알아야 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지난 6일 경칩(驚蟄)이 지났다. 날씨가 따뜻해져 초목의 싹이 돋고 동면(冬眠)하던 동물이 깨어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몸을 보한다고 해서 개구리 알을 먹는 풍속이 있었으며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했다. 보리, 밀, 시금치, 우엉 등 월동에 들어갔던 농작물들도 생육을 시작해 농촌은 아연 활기를 되찾는다. '반갑다 봄바람이 의구히 문을 여니/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빛 새로워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한글로 정리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2월령을 보면 이른 봄 전원의 풍경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 전원은 양반 사대부들의 유람이나 오늘날 도시인들의 봄 나들이 대상이 아니라 농부들의 노동의 현장이었다.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장원도 수축하고 개천도 쳐 올리소/안팎에 쌓인 검불 정쇄히 쓸어내어/ 불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려니….' 땀 흘리며 밭 갈고 씨 뿌리는 노고(勞苦)를 게을리 했다가는 가을의 결실을 맛볼 수 없는 것이 인과(因果)의 법칙 아닌가. 얼었던 대지를 촉촉히 적시던 비가 그치고 봄은 한걸음 더 가까이 와 있다. 가까운 들녘에 나가 봄의 향기를 실컷 들이마시자. 번잡한 세상사는 잠깐 놓아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