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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3. 10 - 중국내 일제 소주부대 탈출 7인③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3-03-24 00:00:00 2003.03.24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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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대에서 탈출해 한데 뭉치는데 성공한 한국인 학병 7인은 일본 점령지역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갈 길을 재촉했지만 길 안내가 서툰 중국인 안내인에 의지해야만 했기에 첩첩이 쳐진 일본군 검문소를 빠져나가기란 아득한 일이었다. 소주시내만 벗어나려면 일제의 수상경비대와 육전대와 헌병 분견대, 치중대 등 각종 부대 앞을 지나야 했다. 또 일본군 밀정 중국인을 구별해 피해가야 하는 길도 험한 길이었다. 3월10일 오후 1시. 마침내 다시 무장을 점검한 7인의 동지는 마치 토벌작전을 수행하는 일본군처럼 위장하고 탈출 장도에 올랐다. 전투태세의 2열종대를 지어 시가지를 전진해 나갔다. 한참을 걷다 일본군 연락병을 만났고 육전대 본부 영문 앞을 통과하게 되었다. 분대장 역할을 맡은 성 동지의 구령으로 보초와 경례를 주고받으며 탈주 후 위험한 제2관문을 무사히 지나쳤다. 아직 일본군이 7인의 탈주를 눈치채지 못했음을 알아차린 7인은 이윽고 소주성 밖에 이르러 한숨을 쉬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강가에 도착한 7인이 잠시 쉬는 사이 민선 두 척이 도착했고 김봉옥 열사는 성 동지, 김 동지와 함께 뒷배에 타고 작전을 계속 수행했다. 한참 후 일본군 육전대의 수상작전중인 6척의 선단을 만났으나 적당한 위장과 안내인의 기지로 다시 위기를 넘긴 7인은 자정 넘은 시간 탈주후 첫 총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다행히 20여명의 중국 유격대원들이어서 안내인의 중재로 다시 위기를 넘겼지만 그들에게 육 동지가 가지고 있던 기관총을 빼앗겼다. 탈주 첫 밤을 들에서 지샌 7인은 새벽녘 중국인 안내인의 도움으로 가까운 마을에 들어가 아침식사를 한 후 일본군복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중국청의부대 복장인 푸른색 상하의로 갈아입고 사력을 다해 배고품·추위와 싸워가며 두 번째 안내인과 함께 제2의 목적지를 향해 강행군을 다시 시작했다. 이무렵 일본군부대는 7인의 탈출이 알려져 부대가 발칵 뒤집혔고 2개대대 병력이 동원됐다. 탈주 후 5일. 일본군 추격대가 이웃 마을에 나타났다는 안내인의 말에 마을 앞 묘에 숨어 은신했다. 일본군 추격대가 묘소 앞까지 다가와 휴식을 취하고 갔지만 다행히 교전은 면했다. 다시 밤이 되어 김봉옥 동지를 시작으로 보초를 서며 잠을 청한 7인은 아침에 마을에서 오랜만에 일본군 추격망을 벗어나 자유롭게 음식을 먹었다. 탈출 6일째인 오후 3시경 7인은 수로를 통해 일본군 분견대가 가장 많이 집결한 지역을 통과해야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상태인 지역인지라 신경을 두 배로 써야했다. 강 위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을 발견해 한차례의 긴박한 순간을 넘긴 7인은 새 날이 밝자 마침내 탈주 후 기쁜 순간을 맞이했다. 중국 충의구국군 유격대 왕지우 대장 일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일단은 탈주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격대는 한국인 탈주 학병 7인에게 후방 연락이 올 때까지 인근의 일본군 분견대를 습격하자는 요청을 해와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식사 후 논의 끝에 7인은 일본군 분견대 습격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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