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우리 경제의 자구책으로 선택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청년실업과 고학력 실업이 만연되어 가는 상황에서 사는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중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가난에는 두 가지 가난이 있다고 보았다. 그 하나는 ‘강제적 가난’이고 또 하나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강제적 가난이란 자신이 가난이 싫고 부자가 되고픈 데도 그럴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이고, 자발적 가난이란 자신은 얼마든지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데도 부자의 삶이 인간의 본질적·궁극적 의미가 없다는 가치관에서 가난을 조금도 불편 없이 오히려 그 가난 가운데 인생의 의미를 실현해가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자발적 가난’은 물질적으로는 덜 풍요로운 삶이지만 가슴 충만한 행복은 보장받는다는 삶의 태도다. 인류의 많은 선각자들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과 욕망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가난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한다. 덜 풍요로운 삶이 주는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갈파한다. 톨스토이는 가난과 재앙을 동의어로 여기지만 사실 가난은 행복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가난을 재앙으로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행복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만을 추구하는 정보화사회의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다. 클레멘스가 지적했듯이 세상에는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자로 불리는 그럴 듯한 가짜가 따로 있다. 한쪽은 영혼이 가난한 자, 즉 내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며 다른 한쪽은 말 그대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 즉 외적인 물질로부터 소외하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