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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미스벚꽃 입상자 현장체험기②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3-06-28 00:00:00 2003.06.28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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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첫만남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2003 벚꽃들은 지난 23일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역시 만남이란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일정에 따라 문화탐방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많은 문화유산을 체험을 하게 되었고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많은 문화유적지들이 있음을 몰랐던 것에 대해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군산시 상산면 일대 금강호 주변의 문화탐방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채만식문학관이다. 채만식 선생의 치열한 삶의 여정과 고뇌 속에서 태어난 작품들을 접하며 소설 속의 배경과 인물들을 통해 채만식 선생의 삶을 들어다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반추해 보기도 했다. 1902년 6월에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에서 출생한 채만식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에겐 배타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일제가 얼마나 미웠을까? 그의 저서로도 유명한 탁류는 2000년 채만식 선생 타계 50주기를 기념하여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군산을 배경으로 하여 1930년대 조선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처음으로 문학관이란 곳에서 뭔가 삶의 역정이 배어있는 향기를 느꼈다. 이어 탁트인 금강을 따라 금강호 일대를 관광하였다. 1990년 환공된 금강하구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 지이기도 하다. 종전 전북 군산과 충남 장항 사이를 뱃길로 다녀야 했으나 금강 하구둑이 생긴 이후에는 도로가 생기면서 좀 더 편한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편리함뿐만 아니라 장장 4백㎞에 이르는 강물을 하구둑으로 막아 금강호가 탄생돼 관광명소로 부상하게 되었다니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금강호를 따라가다 보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보이게 된다. 오성산이라고 불리는데, 이 산은 다섯 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로 이루어졌고 그 연봉과 줄기가 금강에 바짝 몸을 대고 있는 명산이다. 오성산 정상에 서면 금강의 중류와 하류가 한눈에 들어오고 여기에서 바라보는 금강의 줄기는 한 폭의 무병빛으로 보일 만큼 일품이다. 오성산은 군산시민들이 충절의 상징으로 삼아왔으며, 산의 외모는 거대한 다른 산들과 비할 수 없으나 어딘지 모르게 숙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산 정상에 있는 오성인의 묘를 돌아보면 가슴 뭉클하게 하는 사연이 있다고 하는데 ??옛날 신라가 백제 땅을 얻기 위해 당나라의 군사들을 불러들일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끄는 군사들이 이 금강하구로 들어와 오성산을 지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당나라 장수가 부여로 들어가는 길을 알아보기 위해 오성산에 올랐는데 마침 다섯 명의 노인들이 산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당나라군이 부여로 들어가는 길을 노인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노인들은 오랑캐 놈들한테는 알려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죽임을 당했던 곳?繭?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이 다섯 분의 묘를 이곳에 쓰고 산 이름을 오성산(五聖山)이라 명했다는 전설이 있단다. 설명을 듣고 오성인의 묘를 보니 웅장함이 더하여 오성인을 위한 추모와 함께 숙연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어느덧 세 곳을 탐방하고 나니 뱃속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의 점심은 군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군산 계곡가든의 꽃게장백반이었다. 우리의 전통음식인 꽃게장백반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게등껍질 속에 넣고 쓱싹쓱싹 비벼 먹는 그 맛을 보고 나니 너무 기뻤다. 싱싱한 꽃게, 특이한 맛과 향이 나는 게장소스, 알맞은 숙성으로 게살의 싱싱함이 살아 있어서 전국적으로 찾는 손님이 많았다. 한약재를 넣고 만든 특이한 소스맛 덕분에 특허를 받아 벤처기업으로 성장한 계곡가든 주차장을 보면 관광지나 다름없이 대부분이 타지역 차량들로 가득했다. 지금도 그 곳의 꽃게장을 생각하면 저절로 군침이 돌 정도로 생각이 난다. 푸짐하고 맛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마지막 장소인 충남 서천군 한산면 월남 이상재 선생의 생가와 한산모시타운을 들렀다. 18살의 나이에 나라걱정을 했다는 이상재 선생의 선구자적 행적에 깊이 머리숙여진다. 초가의 생가는 인적이 없어 쓸쓸했지만 선인들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모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한산모시타운에서 우리의 전통옷감 생산과정을 보았다. 하루라는 시간 속에 정성과 땀이 배인 문화유적지들을 돌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너무나도 짧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의 문화탐방은 끝났지만 미처 몰랐던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시간들 이여서 너무나 뜻깊었다. 우리 고장에 대해 다시 한번 애착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금강호의 자연과 어우러져 곳곳에 자리한 문화유산의 향기를 다 담을 수 없음이 아쉽지만 장차 시간을 내 다시 오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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