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지난 얘기를 해보자. 그 때 담배는 낭만과 로맨스의 상징이었다. 신사의 멋스러움을 더해주는 품격이었다. 동서고금의 많은 명사들이 애연가였음은 물론이다. 소설 시 수필 등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엔 담배 예찬론이 보석처럼 박혔다. 가요 고사 일화 격언 속담에까지 어김없이 등장한다. 미국 담배 말보로(Marlboro)가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tic Occasion(남자는 로맨틱한 사건으로 사랑을 기억한다)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는 출처불명의 소문도 있을 정도다. 초행길 길손이 길을 물을 때 흔히 듣는 '담배 한 대 피울 만큼 가면 돼' 하는 무뚝뚝한 촌로의 대꾸가 도리어 정겨운 것도 담배가 우리네 서민과 오래한 벗이어서 그러리라. 이랬던 담배가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세월이 흐르면 세태가 변한다지만 담배만큼의 급전직하 신세도 드문 듯하다. 원산지 남아메리카에서 16세기 유럽에 소개된 이래 최고의 기호품으로 사랑 받았지만 지금은 아예 '악마의 잎' 취급이다. 니코틴을 주입한 쥐가 즉사했다는 것은 이미 19세기초에 증명됐다. 50년대 들어서는 흡연이 폐암의 직접적 원인으로 인정됐다. 근년에는 아예 마약으로 분류됐다. 담배 한 개비가 수명을 6분씩 단축시킨다는 끔찍한 연구결과는 이젠 상식이다. ▼애연가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더 잘 안다.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 바로 담배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을까. '담배끊는 일만큼 수월한 건 없다. 나는 천번도 넘게 끊었다.' 그가 지금 한국에 산다면 분명 '반딧불족'이 됐을 것이다. 한밤중 아파트 베란다로 쫓겨난 가장들이 창문 열고 피우는 담뱃불이 마치 반딧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반딧불족. 이달 들어 금연구역 확대와 함께 위반자에 대해서는 범칙금이 부과된다. 그렇잖아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던 애연가들, 이젠 선택의 막다른 기로에 섰다. 초라한 '길거리족'이 될 것인가, 아니면 '더러워서라도' 끊을 것인가. 공중에 흩어지는 한 모금 담배 연기에 시름만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