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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3-09-29 00:00:00 2003.09.29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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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훌쩍 지날 때쯤이 되고 나서는 준비해온 밥통의 밥이 모자라 급한 마음에 가게에서 라면까지 사다가 끓였지만 어디서 오는지 공짜 손님은 자꾸 늘어나고만 있었다. "어쩌지요, 오늘은 준비된 것이 이뿐입니다" 이마의 땀을 씻으며 지친 부녀회원이 맨 끝줄의 영감에게 어색하게 허리를 굽혔다. "이게 무슨 경우요? 교회에서 준다는 밥도 마다하고 왔는데 이러기요? 완전히 개판이 구만" 기다리다 허기진 입으로 돌아서면서 씹어대는 욕이 더 크게 들렸다. 한데 어떻게 그만 둘 수가 있는가? 아무리 시작이야 잘난 끼로 시작한 봉사라고 하지만 이제 물러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이다. 부녀회의 끼로 치부할 문제 아니었다. 잘못하다가는 잘난 여자들 때문에 시장 전체가 욕을 먹을 판이다. 여자들 하는 일이라고 뒷짐을 지고 있던 남자들까지 팔을 걷고 나섰다. 제일 먼저 하봉기가 앞장을 섰다. 시장 입구에서 라디오 수리와 함께 중고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유성 전파사 사장이다. 이런 일에 하봉기가 빠질 수도 없는 일이다. 작년에 시장 상인 조합장을 하려다 밀려나서 지금은 와신상담을 하고 있는 처지지만 시장 일이라면 약방의 감초가 아니었던가? 이런 호기를 놓칠 하봉기도 아니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장사도 되지 않고 할 일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기다린 듯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도 봉사를 해야 할 때입니다. 정치를 잘못해서 국가에서 할 일을 하지 못하면 우리시장 상인이라도 나서야 할 것 아닙니까? 내가 조합장을 하겠다는 것도 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잘 났다. 또 저 인간이냐?" 몇 사람이 뒤에서 비웃으면서 욕인지 칭찬인지 숙덕거렸지만 배고픈 사람 밥 주자는 일에 팔 걷고 침튀기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이 다 그렇지만 언제나 시작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자리가 잡혀가는 것이다.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반대로 좋은 일이라고 팔 걷고 나서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배가 고픈 사람이 저렇게 많은가? 보다못한 시장 안에 있는 점포는 말할 것 없고 노천 상인들까지 하나둘 끼어 들기 시작했다. 쌀가게에서는 쌀을 내고 생선가계에서는 생선을, 그리고 채소가계에서도 시들어 팔지 못하는 배추며 상추를 내놓았다. 인근 교회에서도 무료 급식을 한다는데 천당이라면 너희들만 갈 것이냐? 예수 믿지 않아도 좋은 일 하면 가는 것 아니냐? 상인들이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넘어 제법 자리가 잡혔을 때는 중앙로를 건너 해망동까지 소문이 나서 월명 공원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한둘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 몇 일 사이에 밥 식구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매일 매일 불어나는 숫자 때문에 전날에 식사인원을 사전 파악해야 할 판이 되고 말았다. 여러 사람들이 진실로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힘을 합치다보니 봉사 식당도 점점 자리가 잡혀 제법 따뜻한 밥에 반찬 가지도 늘어났다. 밥맛이 좋아서 일까? 멀쩡한 사람들도 공짜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왔다. 어떤 영감은 며느리가 해주는 밥보다 더 따습고 정성이 깃들었다고도 하고 또 다른 노인은 자기 집보다 김치 맛이 월등히 좋아서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고 변명 아닌 변명까지 늘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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