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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3-10-06 00:00:00 2003.10.06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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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리던 기차 역장도 천당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는지 마음을 돌려 도와주기 시작했다. 광장에 쓰레기가 쌓여도 웃으면서 빗자루를 들고 나와 청소를 하더니 비가 오는 날에는 역사 안에서 식단을 차리라고 크게 선심을 썼다. 덕분에 구질구질하게 비가 오는 날은 더 성황을 이루었다. 이제 무료 급식소는 배고픈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 아니었다. 아주 당연히 점심 한 그릇은 받아먹는 곳이 되었다. 내가 거지냐? 공밥 얻어먹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던 장기판 노인이며 느긋하게 부채질을 하던 영감까지 헛기침을 해대면서 줄을 섰다. 어디 그뿐인가? 정년 퇴임하고 놀러나 온 사람도 있고 지나가던 경찰관도 한 그릇 점심을 때우고 근무지로 가면서 좋은 일 많이 하라고 격려까지 해 주었다. 하봉기도 신이 났다. 언제 자신이 앞장서서 이렇게 잘 된일이 있었던가? 더구나 자선사업이다. 몇 백원짜리 라디오 고치러 오는 사람도 없는 가계 따위는 안중에 없어진지 오래다. 더구나 요즈음 들어 더욱 앙칼져진 마누라 얼굴도 보기 싫은 처지다. 점심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딴 핑계가 없다고 해도 좁고 음침한 가계에 앉아 있고 싶지가 않은 판이다. 더구나 잘만 하면 내년 조합장에 출마에 명분이 설 수 있을 것 같은 호기가 아니겠는가? 팔에 봉사라는 완장를 만들어 차고 싶었지만 그 또한 너무 설친다고 욕을 먹을 것 같아서 참았다. 물론 주최야 어디까지나 부녀회다. 하봉기야 괜히 설쳤지만 부녀회에서도 하봉기 하는 데로 그냥 놓아두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노점상들을 선동하고 팔다 남은 식료품이라도 걷어 오는 일에 앞장 설 수 있는 사람은 봉기가 제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마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별일이 없었다. 문제는 노숙자들이 모여들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처음에는 월명공원 쪽에서 몇 사람 찾아오는가 하더니 어느 날 아침에 와르르 몰려든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숫자 때문에 그릇이며 숟가락까지 모자랐다. 여기저기 노숙자가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확실하게 말해서 노숙자는 거지가 아니다. 공밥에 이골이 나지는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챙이 큰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얼굴을 감추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식기를 받으려고 줄까지 서는 것이 창피해서 제법 거드름도 피웠다. 그것도 하루 이틀 지나더니 헛기침 따위는 간 곳 없고 질펀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좋은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나섰던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장사는커녕 집안 살림도 미루어야 할 판이다.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더니 포기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봉사하는 부녀자들이 숫자를 늘리더니 윤번제를 시작했다. 돈 많은 부자도 아니고 복터진 여자들도 아니었다. 생활이 빠듯한 여자들이 더 열심이었다. 눈물겨운 봉사다. 부녀회 덕분에 이제 이 도시에는 문전걸식을 하는 거지들까지 모두 없어지는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시작이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봉사 식당이고 보면 영감들이면 어떻고 노숙자면 어떻겠는가? 오고 싶은 사람들은 아무나 다 모이라고 했다. 인원이 많아지면서 고민은 또 있었다. 식사시간이다. 점심때만 반짝 하면 되던 봉사였다. 한데 인원이 늘어나면서부터 오전 열시부터 시작을 하는 급식은 낮 열두시까지 밥그릇을 날라도 끝이 나지 않았다. 더 늦게 오는 식객도 있었다. 그냥 보낼 수가 없다. 할 수없이 주변 식당에서 밥을 빌려다가 까지 먹이는 그야 말로 아름다운 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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