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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3-10-13 00:00:00 2003.10.13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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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이 떠나지 않고 무료 급식소 주변을 맴돌기 시작을 했다. 인간이 아무리 밥만 먹고는 못산다고 하지만 기본인 먹고 자는 것만 해결이 된다면 급한 데로 살아갈 수는 있는 모양이다. 밥은 무료급식소에서 먹고 잠은 역사 뒤편 굴다리에서 자면 된다. 무료 급식이 시작되지 않았을 때는 굴다리에서 잠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휑하니 귀신이 나올 듯 썰렁했었다. 한데 사정이 달라졌다. 역사 뒤쪽에 있는 굴다리 속에서 잠을 자고 나면 공밥 먹겠다고 버스를 타야 할 번거로움조차 없어진다. 또 부녀회의 밥통이 오기도 전에 제일먼저 앞줄에 서 있다가 뜨끈뜨끈한 밥그릇을 받을 수가 있어서 좋다. 할 일없는 노숙자가 시간을 아까워 할 일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앞줄에 서서 밥을 빨리 얻어먹고 나면 또 이득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열한시쯤 아침 겸 점심으로 밥그릇을 비우고 나면 졸립기 마련이다. 그런 때 햇볕이 가려진 굴다리 아래서 뱃가죽을 긁으면서 늘어지게 자는 꿀 같은 잠을 자보지 않은 사람은 그 근사한 기분을 모를 것이다. 하봉기 재미는 달리 또 있었다. 다음날 식사 인원을 파악하다가 부녀회에다가 귀띰을 해 주어야 한다. 뒷짐을 지고 굴다리를 둘러볼 때면 마치 시찰을 하는 기분이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달려와서 반갑게 인사까지 하는 노숙자가 있는가 하면 구세주처럼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우쭐거리는 기분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 사람들을 도와야 주어야겠구나. 할 때쯤 어쩜 자신도 노숙자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 날밤은 몹시 무더운 밤이었다. 찜통처럼 땀이 흐르는 가계 안방에서 예쁘지도 않은 마누라와 얼굴을 맞대고 있자니 괜한 짜증이 난다. 마누라 얼굴이 틀어진지는 오래다. '밥도 못 찾아 먹는 주제에 봉사 식당은 뭐여?' "더운데 왜 또 시비냐?" "낮에 최씨 왔다갔어." T.V 장물아비다. 벌써 열대 값이 외상으로 밀려 있다. "밤에 또 온다고 합디다." "개자식!" "돈주면 오지 않을 것 아니요." 마누라가 또 새끼간을 긁는다. 사실이 그렇지만 요즘 장사가 안되는 것은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는 일 아닌가 말이다. 살아갈수록 정은커녕 얼굴마져 보기 싫은 마누라다. "개자식!" 최가란 놈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제 놈도 도둑놈에게 훔친 물건 사서 파는 도둑놈이 까짓 외상값 좀 밀렸다고 밤낮 쫓아다니며 극성을 떠는 꼴이 아니꼽다. 이마위로 진땀이 베어 온다. 하봉기는 털털거리면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선심이나 쓰듯 마누라에게 밀쳐 던지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갈곳이 없다. 어디로 갈까? 방황하던 발걸음을 문득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갈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굴다리를 찾아가면 공밥 얻어먹는 노숙자들이 구세주처럼 반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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