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의 시비가 지난 26일 오후 2시경 깊은 가을의 때 이른 찬바람 속에서 모처럼 내비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은파유원지 수변공연장 앞에 세워졌다. 이날 금강문화축제 2003세노야의 하이라이트인 고은 시인의 시비 제막식에는 강근호 군산시장과 강봉균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역인사, 안도현 시인과 국내 유명시인, 도내 문인과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고은 시인은 “고향 군산을 찾을 때마다 이어져온 시간의 연속이 마침내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강조하고 “항상 자신을 0으로 돌려놓으려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이제 0으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맞이했다”며 항상 기억해준 고향 사람들에게 무안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고 시인은 이어 특유의 몸짓, 거침없고 함축된 언어로 시비 제막의 의미를 설명하며 시비 제막행사에 참석한 축하객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 행사에 앞서 오전 선유도를 다녀왔다는 그는 “선유도에 노래섬이란 곳이 있다. 어부들의 삶의 노래 소리가 가득한 그곳, 기막힌 삶들을 들려주는 노래섬이 우리 고장에 있다”며 감정 북받쳐 오른 표정을 지었다. 이어 고 시인은 어린 시절 가도란 섬에서 썰물 때 바닷길이 생긴 곳을 들어갔다가 밀물 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죽을 뻔했다는 회상을 하며“가도란 곳은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만나는 기막힌 곳”이라며 오랜만에 고군산열도를 다녀온 감격스런 소감들을 토해냈다. 고 시인은 2003세노야축제 첫날인 지난달 25일 토요일 오전 문학강연 중에도 아리랑을 부르며 강연장 분위기를 색다른 공간으로 꾸몄고, 저녁시간대 군산지역 청소년들의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친 세노야 축하공연장에서는 청소년들과 리듬을 맞추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다소 싸늘한 날씨를 이기려 마신 몇 잔의 소주에 취기가 오른 때문일까 고 시인은 무대 앞줄에 앉아 다른 시인이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자 박수로 응답하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고은 시인은 금강문화축제 2003 세노야가 열린 이틀동안 고향 군산에 머물며 많은 말들, 기억될만한 특유의 몸짓과 표정을 남겼다. 그러나 금강문화축제가 첫 행사인 만큼 운영상 보완할 점도 다소 눈에 띠었다. 이에 정민 공동준비위원장은 이번 행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매년 금강문화축제를 이어가며 군산지역의 문화역량 강화를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