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일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이번엔 호원대 야구부 고문 자격으로 군산을 찾았다. 지난 2일 호원대 야구부 창단식에서 축사를 한 이 고문은 군산 야구가 한국스포츠를 세계적으로 성장 발전시키는 기틀이 됐다며 그 이유를 차분하게 요약 설명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962년 군산지역 4개 초등학교(군산·중앙·남·금광)에 야구부를 창설했다. 당시 군산상고 김용남 감독 김형석이 야구를 했고, 김일권 선수는 남초등 1학년이었으며, 김성한 현 기아타이거스 감독은 4살 때였다. 이를 기반으로 10년후 군산상고 야구가 1972년 7월 당시 명문 부산고에 1-4로 뒤지다 9회말 5-4로 대역승하며 난리가 났다. 그러자 곧바로 광주지역과 충남지역에서 야구부를 만들겠다고 찾아와 도와달라 했다. 여러 곳을 열광케 했다. 당시는 고교야구가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의 4곳 중심으로 열렸던 상황의 반전이었다. 이후 군산상고 야구 경기가 있을 때면 야구장은 초만원 사례를 이뤘고 고교야구는 당시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군산시민이 키운 야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80년대 프로야구를 탄생시키며 당시 고교야구의 인기를 반영했다. 즉 고교야구의 인기를 바탕으로 출신고교를 연고지로 한 프로구단 선수구성이 이루어지게 했다. 모두가 군산시민이 키운 야구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프로야구가 성공적 출발을 하자 프로축구와 프로농구, 프로배구 탄생으로 발전해 갔다. 이런 일들이 지난 1962년 군산에 4개 야구부를 탄생시킨 이후 이어진 것이어서 군산시민들이 키워준 야구가 얼마나 큰 일을 해내는 기틀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이날 이 고문은 후천적으로 성장한 운동선수가 더 대성한다며 일본 프로야구 3천84안타를 기록한 장훈 선수의 오른 손 기형 극복 사례를 들었다. 또 선수가 기량을 향상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3번째 요건에 해당되며, 첫 번째는 철저한 목적의식의 마음가짐이고, 두 번쩨는 스스로의 체력보강 노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