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것 같던 삼 년이 무척 길었던 모양이다. 제대 복을 입고 왔을 때 귀순이는 시집으로 마을을 떠났고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있었다. "이제 면에 가는 거냐?" 아버지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세상이 선거 판인데 까짓 서기 들어가서 어느 세월에 군수 됩니까?" "달리 벼슬길이 없지 않느냐?" "선거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사업을 해서 돈을 먼저 벌고 봐야 하는 겁니다" "자본도 없는데 무엇으로 장사를 할 것이냐?" "방법이 있지요" 사실 봉기는 제대 열차를 타고 올 때부터 마음속으로 결심한 것이 있었다. 같이 제대를 하는 김병장에게 얻어들은 풍월이지만 돈 버는 거야 간단하다. 입대하기 전 서울 청개천에서 전자물품 장사를 했다는데 가계만 얻으면 물건은 그냥 대준다고 했던 것이다. 가계를 얻을 돈이 문제인데 그 또한 생각 해둔 것이 있었다. 양조장 김사장이다. 좀 엉뚱하지만 봉기는 자신이 귀순이와 잘못된 것도 모두 김사장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귀순이 어머니 무당과 김사장이 놀아나지만 안했어도 귀순이가 그리 일찍 시집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녀의 어머니가 불륜을 숨기느라고 귀순이를 이조판서 묘 근처에 얼신도 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억지라고 하기에는 봉기의 마음이 너무 비뚤어져 있었다. 양조장만은 입대하기전보다 더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보름날이며 그믐날 몇 차례 소나무 그늘 속에 숨어서 살폈지만 이제 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 온 것이다. 밤새 몸을 뒤척인 봉기가 새벽부터 일어나 양조장을 향해 걸었다. 양조장 기와 지붕위로 뿌옇게 먼동이 터 오고 있었다. 술 밥 찌는 냄새가 골목까지 쏟아져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새벽부터 웬일이냐?" 봉기의 불량기를 알고 있는 김사장이 뜨악한 얼굴이다. "부탁 할일이 있어 왔습니다" "내게?" "예" "말해보게" "사업자금 좀 빌려 주시오" "누가 사업을 하는데?" "제가 합니다." "얼마나?" "열 가마니요" "쌀?" "예" "네 아버지가 보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