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이 새끼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후비면서 가재 눈을 뜨고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아니요 내 생각입니다" "담보는 무엇으로 할거냐?" "신용이요" "이놈이아침부터 실성을 했나" "확실하게 갚아 줄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네 애비도 아니고 네놈이 쓴다? 이런 맹랑한 놈이 있나?" "제 사업인데 왜 아버지를 거론하는 겁니까?" 아니꼽다는 듯이 김사장이 비웃는 얼굴로 봉기를 노려보았다. "왜? 못 빌려 준다 그 말씀이시오?" "이놈아 삶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지 않을 소리 하덜 말거라" 마주 서 있는 봉기의 표정이 돈 빌리러 온 사람 같지 않게 당당하다. "이 싸가지 없는 놈이 아침부터 웬 행패냐?" 김사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사납게 일그러지면서 봉기를 노려보았다. "할 수 없지요" "없으면?" "귀순이 어머니한테 가보려고요" "거긴는 또 왜?" "두 사람 모두 빌려 주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에게 말해 버리려고요" "뭘?" "이번 그믐날밤 뒷산 무덤 옆으로 구경 좀 나오라고요. 김사장님 아랫도리가 하도 실팍해서 마을 사람들 구경 좀 시켜주면 좋아들 할겁니다" "이런 육시헐" 김사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누구 왔어요?" 눈치도 없이 마침 양조장 안주인이 밖을 내다보았기 때문에 기겁한 김사장이 히죽거리는 봉기를 잡아끌고 번개같이 대문 밖으로 밀치고 나왔다. "빌려 주시겠습니까?" "알았네 나가서 이야기하세" 말투까지 바꾸어 버린 김사장이다. "비밀 지켜 줄란가?" "여부가 있습니까?" "좋네! 허나 일년 안에는 갚아야 하네" "약조대로 하지요" 그래서 공갈친 돈으로 전세금을 내고 얻은 것이 유성 라디오 점포다. 라디오 수리 점포로 명칭을 붙인 것은 세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재주로 꼼지락거리고 몇 천원씩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해서였다. 처음 장사는 생각보다 잘되었다. 전자제품이 귀한 때라 서울에서 가져오기만 하면 외상도 없이 잘팔려 나갔다. 한데 물건을 대준다던 친구가 처음 몇 번은 봐주더니 어느날 느닷없이 물건값이 선불이라고 떼를 쓴 것이다. 업친데 겹친다고 덤빙 가게가 여기저기 많이 생겨나면서 유성전자는 선거 자금은커녕 밥벌이조차 시원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