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이 누군가? 원수 같은 I . M . F .라는 거창한 경제 불황이 오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는 회사 사장으로 이 나라 경제를 이끌고 가고 있는 산업 역군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또 지금은 밀려나 있지만 내일이라도 자신은 다시 재기해서 옛날로 돌아갈 것을 굳게 믿고 있는 것 또한 각설이 패와는 다른 점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거지들은 어떤가?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봐도 조상때부터 보잘것없는 놈들이 뻔하다. 얻어먹는 것에 이골이 난놈들이 아닌가? 빌어먹겠다고 신명이 나서 장타령을 죽을둥 살둥 거품까지 물면서 하는 천한 놈들이 각설이 놈들이 아니냐? "미친놈들 지랄하고 자빠졌네" 각설이 패 생각은 또 다르다. 얼치기 같은 놈들이 노숙자란다. 사장 해쳐 묵은 놈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벌건 대낮에 줄까지 서서 공밥 얻어먹는 치사한 놈들이라고 비웃어 댄다. 자신들이야 거지라고 까놓고 직업 삼아 얻어먹고 살고있으니 창피할 것이 없다. 한데 제 놈들이 무슨 염치로 굴다리 속에서 신문지 깔고 누워서 식은 밥이니 더운밥이니 까불어 대냐는 것이다. 참으로 웃기는 놈들이 노숙자라고 악을 쓰고 있었다. 거지야말로 역사적으로다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있었던 일종의 직업이다. 쉬운 예로 중국의 무협소설을 보면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엄연히 무술의 한 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놈들이라는 토까지 달았다. 사실 객관적으로다 들어보면 참 웃기는 인간들이다. 아무리 양쪽이 저 잘났다고 발버둥을 쳐봐도 윷판의 도나 개 차이다.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찢고 까부는 것들이 돼지 발싸개 같은 거지 싸움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영악한 동물이 사는 곳에는 이해관계가 있으면 싸움질은 필연인가 보다. 하물며 거지와 노숙자가 무슨 체면이 있겠는가? 공짜 밥에 공짜 잠자리인데도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침을 튀기며 싸움을 벌리기 시작을 했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이 서로 다투더니 그것도 편이라고 서로 뭉쳐 때로 편을 드는 것이 가히 눈물겹다. 그러다 말겠지 했다. 하루에 한끼 먹고 싸움질을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한데 그게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싸움이 붙은 것이다. 첫서리가 내리고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날이다. "자리 좀 비키더라고!" 나이 살이나 먹은 왕초 거지가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자리로 밀고 들어왔다. 하봉기까지 누워 있는 굴다리 속 명당이다. 여름에는 더위를 삭여주고 날씨가 추어지면서는 아늑한 공간으로 변해 주었다. 당연히 애초부터 차지하고 있던 노숙자들의 몫이다. 더구나 여름 내내 하봉기가 소주병으로 다져 놓은 자리가 아닌가? 한데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각설이 놈이 염치도 없이 기어 들어오는 것이다. "여기 한자리 끼더라고, 잉." "뭐야? 임마! 저리비켜. 이거지 새끼가 어디로 기어 들어와" "얼레? 이자식 여그가 느네 집 안방이냐?" "흐이그 이 냄새! 임마 거지 주제에 어딜 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