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시민운동으로 추진되기 위해선 정치권과 시 관심 가져야 한강이남 최초의 3.1운동 발상지인 군산 구암동산에 대한 사적지 지정과 성역화사업이 10여 년째 외면당하고 있어 범시민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주정신을 심어주고 선구자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구암동산의 3.5의거는 유관순 열사의 1919년 4월 4일 아우내 장터 거사보다 한 달 앞서 일어난 한강이남 최초의 3.1운동이다. 이 3.5의거는 기미년 2월 26일 구암교회 신도이자 서울 세브란스의전에 재학 중인 김병수 선생이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200여장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비롯됐다. 김병수 선생은 자신의 은사이자 이 교회 집사이며 교사인 박연세․ 문용기 선생 등과 3월 6일 서래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했으나 사전에 일경에 의해 발각됐다. 이때 본인(김병수 선생)과 거사 주도한 박연세, 이두열, 김수영 등이 잡혀가는 바람에 무산되는 듯 했다. 하지만 거사 하루 전인 3월 5일 구암교회 교인과 영명학교(군산제일고 전신) 교사 및 학생, 시민 등 800여명이 구속자 석방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한강이남지역의 3.1운동에 본격적인 불을 당겼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항일운동이다. 시는 구암동산에 이 같은 역사의 숨결을 되새기고자 민선 초기 성역화용역까지 마쳐 놓고도 10여년째 방치,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 구암교회와 영명학교, 궁멀예수병원이 자리했던 독립만세운동의 발원지인 구암동산은 당시만 해도 약 10만㎡에 달했으나 화력발전소 사택과 세풍아파트가 입주함으로써 구암교회와 약 5000㎡의 부지만 남아 후세인들의 기억 속에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이에 따라 구암교회 신도들이 주축이 돼 지난 1993년부터 성역화사업회를 결성해 부지 매입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예산확보가 힘들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암동산 성역화사업은 2005년 확보한 10억원의 교부금으로 옛 구암교회의 건물과 부지를 매입하고 전시공간을 꾸미기 위한 리모델링공사를 발주한 것이 전부다. 현재 이곳에는 2008년 11월 20일 개관한 군산3.1운동기념관이 들어서 있지만 예산부족과 사료문제 등으로 군산 3.1운동사를 정리하는 내용보다는 전국적인 내용을 담은 독립기념관 복사본으로 채워져 있다. 이에 시는 올해 자체자료를 수집, 홈페이지를 제작해 매뉴얼화 할 방침이다. 과거 3.1운동 기념사업회 본부장이었던 이성수 구암교회 장로는 "그동안 많은 정치권인사들이 성역화문제를 거론했지만 별로 진전된 내용은 없는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군산시와 서부화력발전소측과 사택부지 매입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만큼 향후 문제가 해결될 경우 예산을 책정, 성역화사업을 마무리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