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들의 가족 역시 걱정과 우려 속에서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길을 걸어갈 때, 밥을 먹을 때, 생리적인 현상을 할 때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노골적인 시선와 차별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장애인들도 태반이다. 하지만 숱한 위기와 장애를 극복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시각장애인 육상선수 장이삭(20)씨. 유년기 그는 여느 아이들과 똑같았다. “이삭이는 아주 똑똑했어요 다섯 살 까지. 제 동화 구연을 듣고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외울 정도로 명석했어요. 합기도에도 흥미가 있었고요” 어머니 노서운 씨는 ‘다섯 살 까지’라고 말했다. 장 씨가 6살 되던 해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시신경이 손상되고 뇌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모는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진단을 받았고 결과는 청천벽력이었다. 장 씨는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판정받았고 뇌수술 후 전신에 주삿바늘을 꽂아 가며 2년간 병원 신세를 졌다. 익산에 있는 맹아학교에 입학한 장 씨의 학교생활은 험난했다. 머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학습, 정서기능에 장애를 입어 점자를 습득하는 데도 몇 배나 힘이 들었고 화가 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면 감정제어가 안 돼 이상행동을 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지켜보며 아들이 재기할 수 있게 도왔다. 점자습득 후 가장 먼저 한 건 장 씨의 특기를 찾는 일. 오랜 시간 끝에 찾은 그의 특기는 달리기였다. 아버지 장세원 씨는 “이삭이가 종례가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달려 나가는 민첩한 운동 신경을 담임 선생님이 발견하고 달리기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2010년부터 달리기 연습에 매진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트랙을 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뛰다가 평형감각을 잃으며 넘어지고 부상을 입는 행동이 반복됐다. 장 씨는 공교롭게도 그해 열린 전국장애인체전에서 떨어지는 고배를 마셨다. 부모는 ‘당시 계속되는 슬럼프로 이삭이가 포기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장 씨는 “실패를 거듭해도 꾸준히 달리고 싶다고 부모님께 뜻을 전했다”며 “내가 한 번 이기면 같은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북돋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피나는 노력과 자신과의 싸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장이삭 씨는 2011년 진주에서 열린 같은 경기에서 100m 은메달, 200m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고3때 장 씨는 금메달 2개를 획득하며 영예의 2관왕을 안았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습한 수확이었다. 부모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대전 한빛운동장에는 장애인 선수들의 열띤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관중이 거의 없어 썰렁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뛰는 모습에 얼마 없는 관중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일반인들의 무관심,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지만 장이삭 씨는 자신의 꿈을 위해 꾸준한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사이클 선수라는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발돋움중인 장 씨. 지난해부터 국가대표 신인발굴 프로그램에 사이클으로 입문한 그는 2015 전국장애인체전 도 대표 사이클 선수를 준비중에 있다. 장이삭 씨는 “그동안 달리기를 하며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무살이 된 올해부터는 국가대표 사이클선수가 되어 꼭 금메달을 받고싶다”고 말했다. 그가 장애를 딛고 세상을 향해 비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열정,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어머니 노서운 씨는 저서 ‘상처와 함께 자라는 나무’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삭이가 달리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모한 도전이라 비웃어도 내 아들 이삭이는 어둠 속을 향해 끝없이 달리는 도전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