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손질하지 않은 머리는 아주 적당히 헝클어져 있었다. 사무실서 급하게 나와서인지 시청 엘리베이터안에서 만난 그의 양복 깃은 살짝 접혀졌다. 양복 사이로 부끄럽게 비춰지는 셔츠 팔을 접은 길이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은 왠지 여유가 넘쳐보였다. 그는 털털했다. 그의 옷차림은 직분에 맞지 않게 주름잡힌 양복바지와 광택나는 구두와는 거리가 멀었다. 때로는 구두보다도 운동화가 더 어울렸다. 군산 곳곳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늘 운동화가 편하다고 말하는 그였다. 2일자로 전북도 자치행정국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김양원 전 부시장의 얘기다. 앞서 기자는 시청서 우연히 만난 김 전 부시장에게 2년 재임기간의 소회를 물었다. 부시장의 경우 대개 2년이 주기(週期)다. 따라서 군산서 2년 2개월을 보낸 김 전 부시장도 전북도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에 우연한 기회에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그동안 군산시가 전북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는 2014년 10월 부시장으로 취임했다. 행정고시 35회 출신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전북도 투자유치과장과 대외협력국장, 문화체육국장 등을 거쳤다. 부단체장은 그의 20여년 공직생활중 처음이다. 그는 부시장으로 오자마자 일복이 터졌다. 재임기간 그는 굵직굵직한 지역 현안들과 맞닥뜨렸다. 새만금 송전철탑과 군산 전북대병원, 페이퍼코리아 이전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의 주요 현안문제들이 제 임기중에 해결돼 뿌듯하고 감사할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런데도 그의 욕심은 컸다. 욕심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아쉬움을 낳는다. 그리고 욕심과 아쉬움의 크기는 비례한다. 남들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그에게만은 그랬다. 열 가지중 한 가지만 이루지 못해도 가슴 한구석에 ‘아쉬움’이라는 석자를 새기는 그였다. 기자의 뇌리 속에도 그는 그렇게 기억됐다. “전북수출의 9%에 달하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문제가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전북도에 가서도 군산조선소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마침내 그는 전북도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자치행정국장에 올랐다. 주변에서는 영전(榮轉)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겸손했다. 그리고 군산시민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족한 저에게 언제나 힘을 실어준 시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군산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