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한강이남 최초의 3.1운동 발상지인 군산 구암동산에 대한 성역화 사업이 내년 3월이면 마무리될 예정이다. 구암동산의 성역화를 기원하며 지난 1992년부터 진행된 ‘3.5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시작한 지 26여년 만에 맺은 결실이어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시는 따르면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그 동안 ▲3・1운동 기념관 ▲구암동산 공원조성 ▲기념탑 및 체험・교육관 등이 조성되거나 진행 중에 있다. 이 사업은 구암동산에서 발원한 ‘군산3.5독립만세운동’에 대한 항일정신을 계승하고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추진됐다. 성역화 사업이 완공되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주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암동산에서 발원한 ‘군산3.5독립만세운동’ 구암동산의 3.5의거는 유관순 열사의 1919년 4월 4일 아우내 장터 거사보다 한 달 앞서 일어난 한강이남 최초의 3.1운동이다. 이 3.5의거는 기미년 2월 26일 구암교회 신도이자 서울 세브란스의전에 재학 중인 김병수 선생이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200여장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비롯됐다. 김병수 선생은 자신의 은사이자 이 교회 집사이며 교사인 박연세․ 문용기 선생 등과 3월 6일 서래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했으나 사전에 일경에 의해 발각됐다. 이때 본인(김병수 선생)과 거사 주도한 박연세, 이두열, 김수영 등이 잡혀가는 바람에 무산되는 듯 했다. 하지만 거사 하루 전인 3월 5일 구암교회 교인과 영명학교(군산제일고 전신) 교사 및 학생, 시민 등 800여명이 구속자 석방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한강이남지역의 3.1운동에 본격적인 불을 당겼다. 이 과정에서 사망 53명에 실종 72명 그리고 195명의 피해인원 등 전북지역 최다의 순국선열이 발생했다. 구암동산 성역화 어떤 작업 이뤄 졌나 구암교회와 영명학교, 궁멀예수병원이 자리했던 독립만세운동의 발원지인 구암동산은 당시만 해도 약 10만㎡에 달했으나 화력발전소 사택과 세풍아파트가 입주함으로써 구암교회와 약 5000㎡의 부지만 남아 후세인들의 기억 속에 점차 잊혀져가는 듯 했다. 이때 구암 교회 신도들과 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1993년부터 성역화사업회를 결성해 부지 매입운동을 벌였고, 군산3.1운동 기념사업회와 구암 교회를 중심으로 매년 3.1절 때마다 군산3.5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진행한 것. 특히 10억원의 교부금 등을 통해 옛 구암교회의 건물과 부지를 매입했고 2008년 11월 20일 군산3.1운동기념관이 개관됐다. 결국 이런 움직임들이 결실을 맺어 2011년부터 ‘구암3.1운동 성역화 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구암산 일원 3만2300㎡에 독립운동 및 호국보훈의 역사성을 계승하기 위한 성역화로 1단계인 공원조성 사업을 펼쳐 기반시설과 기념광장을 2013년까지 마쳤다. 또한 2015년 2월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2월 4억원의 예산을 들여 상징 조형물이 세워졌다. 이와함께 구암동산에 군산3.1운동체험교육관 건립도 추진 중에 있다. 특히 건물외형을 3.5만세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영명학교 외부를 재현키로 했으며 내년 초 문을 열 전망이다. 3.1운동체험교육관은 총 사업비 39억7000만원을 투입해 연면적 969.2㎡의 지상 3층 건물로, 내부시설은 1층 기념추모실(독립의 빛), 2층 재현역사실(그날의 함성 속으로), 3층 체험교육실(그들과의 이어짐)로 운용할 계획이다. 특히 영명학교는 근대 양식의 건축물 외관으로 이는 근대역사경관지구·경암철길과 연계한 관광벨트화 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시는 구암동 3・1운동 기념관 일원에 ‘3・5 만세운동길’도 조성키로 했다. 3・5 만세운동길 위치는 세풍아파트부터 구암동산까지의 진입로 약 230m이며 이곳의 옹벽, 석축, 펜스 등을 활용해 조형벽화와 조형물 등을 설치해 군산이 간직한 역사의 이야기들을 담아낼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구암동산 성역화 사업을 통해 선구자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발판과 함께 군산의 근대사를 일제에 의한 수탈의 아픈 역사뿐만 아니라 항일항쟁의 역사까지 인식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