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 이국에서 모교를 생각하며 장학금을 유서로 남기고 60세를 일기로 세상과 결별한 한 재미동포의 애틋한 사연이 ‘고향사랑’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고 있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 군산중고장학재단에는 30만달러(한화 3억7000만원)의 장학금이 도착했다. 이 장학금은 어려운 생활형편을 타개하기 위해 1975년 2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황춘영(군중고동창회 34회, 1943년 12월 군산시 나포면 주곡리 출생) 씨가 위암으로 사망(2003년 60세)하기 전 평소의 소망대로 모교 군산고동창회에 남겨 놓은 것. 황 씨는 8남 4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운 농촌살림에 대학 학비조차 대기 어려웠지만 가정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많은 형제와 어려운 농촌살림의 현실 속에서 부친마저 24세가 되던 해(1967년)에 여의고 편모슬하가 됐다. 이 때 부터 황 씨는 생활고의 변화를 위해 머릿속에 오직 미국으로 건너가 살아보겠다는 일념이 싹텄다. 결심한 대로 1975년 2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황 씨는 2년후 고국에 홀로 남겨진 모친과 남동생 3명을 불러들였다. 형제 중 누나 1명과 여동생 3명만이 한국에 남았다. 휴스턴에서 살던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은 돈으로 모텔을 운영하다가 다시 일식당으로 업종을 바꿔 운영하며 점차 생활의 터전을 잡게 됐다. 1982년 1월 9일 미국에서 같이 생활하던 모친이 별세했고, 일식당을 운영해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 그의 마음 가운데 평소 고국, 고향, 모교, 어린 시절 등을 떠올리며 어렵사리 공부하던 자신을 상기해 돈을 벌면 못살아 못 배우거나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다짐했다는 것이 주변의 이야기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지난 2000년 초 그는 미국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다. 투병생활에 들어간 그는 2002년 11월 변호사 입회하에 모교 군산고등학교에 장학금 30만달러(당시금액 3억 7000만원)를 전달하도록 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는 2003년 3월 23일 60세를 일기로 홀연히 세상을 등졌다. 황준영 씨의 애틋함이 담긴 값진 30만달러의 장학금은 지난 15일 군산중고 장학재단에 전달됐다. 이에 군산중고장학재단(이사장 박영준)은 이 기금을 고스란히 적립해 영원히 "황춘영 장학금" 이라 명명하고 이자 수입만으로 매년 고 황춘영 씨의 후배들 가운데 10명씩 선정해 연간 수험료 전액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오매불망 고향사랑과 모교사랑을 가슴에 담고 타국에서 뜻하지 않은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황춘영 씨의 장학금 전달 사연은 오늘날 군산교육 발전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실천에는 인색한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군산중고장학재단에서는 재경동창회장학회와 함께 현재까지 1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