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장애학생 해외현장 학습 둘째 날인 지난달 18일.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식당으로 내려가니 일본열도가 뒤집혀 있었다. 전날 오후에 10살 소녀가 집 앞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무참히 살해돼 용의자 수색에 나섰다는 이야기.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부모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란 일본인들은 규격화되고 절제된 생활과 패턴에 익숙해져 최근엔 이와 같은 ‘묻지 마’ 범죄가 성행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이면 만사 오케이. 식당에서 주문할 때도, 사람을 부를 때도, 부탁을 하기 전에도, 언제 어디서나 미안하다고 외치는 일본인들. 진심은 없고 습관만 남아 있는 그들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오전엔 오사카성 천수각을 둘러보고, 오후엔 오사카부립 다마가와 고등지원학교를 방문했다. 철두철미한 준비태세로 일행을 맞이하는 학교 측 태도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학교를 둘러보고, 교류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모습의 그곳 아이들이 과연 장애를 지니고 있는지 분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까지 졸업생은 없지만 이곳을 졸업하면 취업전망이 매우 밝아 일본 내 많은 특수학교들이 견학하고 있다. 일본에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공짜·거저·덤’이라고 한다. 이것은 가족 간에도 반드시 적용되다보니 정이 없는 게 이곳의 정서다. 따라서 일본의 부모들은 자녀를 고등학교까지만 양육하면 부모로서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경제적으로·사회적으로 개인이 독립해야만 하기 때문에 장애학생들에게도 사회인으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맹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독립이 빨라지면서 일찍부터 결혼해서 파경에 이르는 부부가 허다하다. 다행히 사회제도가 발달돼 시설에서 아동들을 보호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비록 사회보장제도는 미흡하나 가족들이 사랑으로 책임지려 하는 끈끈한 정을 보이고 있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셋째 날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저팬을 방문,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당당히 주도하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며 마음을 풀어놓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데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식당 화장실에는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재미난 캐릭터들이 화장실에 숨어있었던 것. 삭막한 생활에 위트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마지막 날인 20일,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떠났던 여정. 여정의 끝인 일상으로의 복귀는 현실 그 자체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장애인용 화장실은 모두 고장 난 상태. 씁쓸함이 공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침대에서만 갇혀 지냈던 현석이와 바다 건너 일본에서 거닐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김용화(전주·44세) 씨. 지체장애 1급에 난치병까지 앓고 있는 현석이의 남은 생애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 현실에 어머니인 용화 씨는 눈물을 삼켜가며 전투하듯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한다. “아이와 좋은 추억 하나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도와준 교육감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감탄사처럼 연발하는 부모들. 장애아를 자녀로 둔 부모들은 무게를 따질 수 없는 시퍼런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먼저 떠나면 남아 있는 내 아이는 누가 지켜줄까? 한 날 한 시에 같은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는 소망을 지녔는가 하면, 다운증후군이나 각종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나보다 자식을 앞세워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 하루 를 보내는 것이 죽음에 다가가는 걸음인 것 같아 시간을 멈추고 싶다”고 말했다. 일행은 이번 여행을 통해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서로의 힘이 되기로 다짐하며 더욱 열심히 살아가겠노라고 힘찬 파이팅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