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우리 이대로 공부하게 해주세요. 청학야학은 단순히 한글을 깨우치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곳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고 인생의 목표와 꿈을 갖게 해 준 소중한 곳입니다.” 폐교 소식을 듣고 울면서 애원하는 군산청학야학 재학생들의 이구동성이다. 지난 44년간 군산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소외계층의 작은 등불이 되어 배움의 길을 밝혔던 군산청학야학(교장 주창근)이 폐교위기에 처하자 재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다. ‘청학’은 1965년부터 학교 밖 청소년과 비문해자, 학력 미취득자 등을 대상으로 힘쓴 결과 중․고검정고시 합격자를 3000여명 배출했다. 또한 2005년도에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평생교육 활동을 인정받아 교육인적자원부가 주관하는 평생교육기관 단체부문 대상을 수상한바 있다. 특히 2008년에는 시대에 맞는 교육활동과 문해교육에 앞장서 군산시가 평생교육도시로 선정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기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교 위기에 처한 것은 현재 교실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경매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 법률강사로 자원봉사하면서 학교를 맡아 운영해 온 주창근 교장은 소유교실이 없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건물을 임차하면서 온갖 설움을 받았다. 이에 2004년 1월 은행채무를 승계하는 조건으로 나운동 옛 군산KBS건물 뒤 5층 빌딩을 인수해 은행권 이자는 주 교장의 사비로 부담했다. 그러나 지난해 2000만원의 제2금융권 이자를 납부하지 못해 경매진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이로써 청학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이에 따라 학교 밖 청소년(자퇴자)과 학력 미취득 성인 등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배움의 길이 막히게 된 것이다. 지난 13일 오후 4시 30분. 할머니 8명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책가방을 둘러 맨 채 난로도 켜지지 않은 교실에 모여 앉아 있었다. 다른 교실에서는 청소년 3명이 수업시간이 아님에도 나와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과거사를 풀어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지 배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지난 50~60평생을 청학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버스를 탈 때에도 눈치껏 타다 다른 곳에 도착해 길을 잃기도 하고, 은행이나 공공기관에서 문서를 작성해야 할 때면 애꿎은 시력을 핑계 삼아 모르는 이에게 대필을 부탁했다. 학부모 모임이나 남편 직장 모임에 갔다가 학교 동문별로 친근감을 표시하면서 어느 학교 출신이냐고 물을까봐 심장이 터질듯 한 긴장감에 오금이 저리기도 했단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통지문을 가져오면 읽을 수 없어 답답했고, 숙제하다 물어오면 그것도 모르냐며 퉁명스럽게 굴면서 눈물을 삼키길 수천번. 차마 남편에게 조차 배우지 못함을 속 시원히 내비치지 못했다고 한다.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무식이 죄 인양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에 하늘만 원망했었다. 그러나 나이 들면 사라질 줄 알았던 배움에 대한 욕구는 해가 더해 갈수록 불타올라 물어물어 청학을 찾아 공부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글만 깨치면 그만 두겠다던 처음 목표와는 달리 초등학교 전 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중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입학을 꿈꾸는 8명의 할머니들. 좋아하던 드라마도 끊고 옆집 아줌마들과 떠들어 대던 수다도 죄다 끊고.. 그렇게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인생에 목표가 생기니까 마음과 머리가 젊어지고,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런데 폐교라니.. “제발 시장님.. 우리 더 공부하게 해주세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숨어서 배움에 목말라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돈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이 맘껏 공부할 수 있는 야학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박미애 사무담당교사는 “학생들은 뜻 있는 분이 건물을 인수하고 교실을 무상으로 임대해주거나, 시에서 건물을 낙찰 받아 영구 임대해줘서 교실 걱정 없이 공부하길 가장 바란다”고 전했다. 이처럼 청학이 유지되길 간절히 소원하는 이는 할머니 학생들을 포함해 모두 80여명. 법적인 절차에 따라 교실이 경매로 넘어가면 군산지역 내에서는 무료로 각종 검정고시를 준비할 곳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청학은 단계별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개개인 수준에 맞춰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어느 때라도 수업에 참여하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여하에 따라 검정고시에 최대한 빠르게 합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특히 개인사가 드러나길 원치 않는 학생들은 가까운 비문해교실을 놔두고 멀리 이곳 청학에서 공부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자존심을 지키면서 남몰래 맘껏 공부할 수 있다는 점. 이것이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열정을 불태우는 가장 큰 장점이다. 타시도에서는 60년대 탄생했던 야학이 시대에 맞춰 변모하면서 새로운 대안교육기관으로 번듯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판국에 군산에서는 그러기는 고사하고 이제 폐교위기에 처해 교육발전이 후퇴하고 있는 듯 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에 따라 군산교육의 발전을 위해 관계 기관인 군산시와 교육청은 물론이고 지역 내 기업체와 단체, 시민들의 관심과 문제해결의 적극적인 태도가 아쉽다는 여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