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신-④ “선생님들의 지도가 없었다면 합격할 수 없었을거예요. 핵융합기술을 선도하는 과학자가 돼서 꼭 은혜에 보답할게요. 친구들에게는 미안함이 앞서네요. 친구들 모두 수능대박나길 바라고요. 엄마·아빠 정말 사랑해요.” 군산에서는 유일하게 카이스트에 합격해 지역과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김혜진(중앙여고·3년)양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 양은 카이스트 입학 사정관제가 도입된 올해 1차 서류와 2차 입학사정관 방문 면접, 3차 심층구술면접을 통과해 당당히 합격했다. 영어교사인 아버지 김재풍(49·중앙고)와 어머니 조현자(45·지곡초) 슬하에 3녀중 장녀로 서글서글함과 리더십, 긍정적인 사고를 소유해 성적 뿐 만 아니라 친구들과 교사들로부터도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해왔다. “부모님께서 선생님은 하늘이라고 가르치셨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떤 험담이나 불만도 갖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이라면 법으로 알고 지켰다”는 김양. 그래서 김양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필기도 하지 않은 채 ‘열중쉬어 자세’로 선생님만 주시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선생님이 하는 농담 한마디까지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 선생님 입에서 튀는 침은 영양주사라고 생각했다”며 그렇게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동생들과 빈집을 지키면서 서해초 재학시절 내내 1등을 유지했다고 한다. 머리가 좋아 그런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양은 ‘할아버지·할머니의 독특한 교육방식’ 덕분이라고 답했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7살까지 김양을 양육해 주신 분은 조부모였다. 당시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던 조부는 손녀를 데리고 곳곳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하루 종일 김양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설명해주고, 같이 놀아주고, 저녁이 되면 종이 위에 짧은 문장을 써서 그걸 외워 발표하게 했다. 조부모의 과장된 박수와 웃음 덕에 웅변에 재미가 들린 김양은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가슴으로 느낀 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로 표현하는 걸 즐겨했다. 자연스레 집중력과 암기력이 좋아진 것. 따로 한글이나 숫자공부를 한 적이 없지만 스스로 한글과 수를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김양의 초등 입학 얼마 후 조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이후로는 오히려 어린 여동생을 하루 종일 챙겨야하는 책임감이 뒤따랐다고 한다.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동생들과 놀아주면서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게 됐다. 이후 동원중에 진학한 김양은 우연히 읽은 과학동화책에 흥미를 느껴 과학동아리활동에 심취했다. 각종 과학경연대회와 글짓기 대회를 섭렵하며 자유롭게 지내던 김양은 중3이 되면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었던 수학은 학교선생님의 도움으로 선행학습을 진행했고, 제일 자신 없었던 영어는 영어교사인 아버지와 함께 1개월간 문제풀이 집중훈련에 들어갔다. 1권의 영어문제집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지문과 문제를 모두 외웠다. 특히 지문은 눈으로 읽으면서 손으로 독해하는 연습을 했다. 또 단어는 30분에 300개 암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 5분간은 훑어보기, 10분은 모르는 단어체크, 10분은 모르는 단어암기, 5분은 최종확인하기 순으로 했다. 이때 절대로 쓰지 않고 눈과 입으로만 암기하는 것이 포인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 몰라볼 정도로 영어실력이 향상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중앙여고에 진학한 김 양은 3년 동안 뛰어난 성적을 유지하면서 학생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교내·외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모범적인 학창생활을 해 왔다. 또 학교 우수학생 수월성 교육 및 군산시 우수학생 주말학습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가해 실력향상에 매진했다. 김양은 “치과의사가 되지 왜 어려운 과학자의 길을 택하냐면서도 나를 지지해 준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꼭 시대를 선도하는 훌륭한 과학자가 돼서 보답하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