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학 강좌Ⅰ(군산학과 문화콘텐츠<입문>)가 지난달 7일부터 오는 12월2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동안 시민과 함께하는 군산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군산시 평생학습관(차량등록사업소 3층)에서 열리고 있다. 군산신문은 모두 9차례에 걸쳐 진행될 이번 강좌를 시민모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지면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 왜 군산을 알아야 하는가? 또 왜 군산학인가! 군산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공종구 교수 1. 오리엔탈리즘(서울 중심주의)으로부터의 해방 우주의 중심은 어디일까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당연히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양한 여러 가지 생각들 가운데 가장 확실한, 따라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바로 나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자 기원이라는 생각입니다. 독단과 독선의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각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내 자신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 이 세상의 다른 사물들이나 존재들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궁극적인 주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퍼져나가는 동심원의 파장을 확장하면 우리 동네, 지역사회, 국가, 오대양 육대주, 우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지점에서 나와 우주가 별개의 실체가 아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치에서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가라타니 코진은, ‘풍경은 외부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 지대에 가 보아야 산소가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처럼, 내부를 잘 보기 위해서는 내부를 벗어나 바깥에 서 보아야 되는 것도 그러한 이치에서일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왜 우리는 군산에 가야 하는가'(글누림, 2014)라는 책은 저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자극하고 촉발했습니다. 양가적 감정 가운데 한 축은 반가움이었습니다. 그 반가움의 실체는 내가 살고 있는 우리 군산 지역 사회가 최근 들어 외부의 타자들로부터 부쩍 많은 관심과 주목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구나 하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었습니다. 다른 한 축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의 실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러한 성격의 연구 성과를 내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작업을 다른 지역의 연구자들에게 넘겨버린 데서 오는 자책과 회한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조금은 궁금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그러한 것처럼, 거기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여러 가지 이유들 가운데 부정할 수 없는, 아니 부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안타깝게도 일제의 강제를 매개로 한 서구의 충격에서 출발한 식민지 근대 이후 우리 사회를 강박과 주술처럼 지배해 온 서구 중심주의의 에피고넨인 ‘서울 중심주의’의 악령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근대화 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1930(1960)년대 이후 지방은 끊임없이 서울의 ‘부정적인 변종’이나 ‘열등한 타자’로 식민화되고 영토화 되어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지방의 일부 거주자들은 서울의 중심성이나 헤게모니를 내면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충실한 사도가 되거나 심지어 서울의 중심성이헤게모니에 자발적으로 투항하는 식민주의의 헤르메스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괴이쩍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힘의 논리에 바탕한 권력 관계가 지배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이러한 현상은 상시적으로 반복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이 초고속 압축 성장의 양상을 띠고서 진행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좀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무조건 ‘아!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배타적 지역주의’의 깃발을 높이 쳐드는 것 또한 마땅히 경계하고 신칙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방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서울의 중심성을 해체하거나 부정하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서울 말고 지방에 또 하나의 새로운 중심성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이유일까요. 지방은 서울의 변방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방은 서울의 변방이 아니라 서울과는 다른 또 하나의 중심입니다. 더 나아가 지방은 서울의 기원이자 뿌리이며, 서울의 그림자를 되비치는 반성적인 타자이기도 합니다. 군산 또한 당연히 그렇습니다. 군산은 서울의 변방이나 내부 식민지가 아니라 서울과는 그 차원이 다른 또 하나의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군산은 1899년 개항 이후의 역사만 하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무궁무진할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문민 정부 시절 의욕적으로 추진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과 함께 적지 않은 근대의 문화 역사 유산과 유물들이 역사의 창고에 봉인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은 유물이나 유적들이 그 당시의 흔적들을 선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근대 역사박물관의 개장 이후 군산은 근대 문화 역사 도시로 환골탈태하면서 외지의 타자들이 우리 군산을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영화 촬영지와 이제는 중소기업의 반열에 오른 이성당을 비롯한 맛집들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면서 우리 군산은 갈수록 외지의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명소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군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군산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군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들이 군산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2.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좋아하게 된다 가끔 군산 출신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적지 않게 놀라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군산 출신의 학생들이 고향에 대한 애정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군산의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의 학생들과 비교를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비교 자체도 별다른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아무튼 군산 출신의 학생들에게서 그 두 가지 사실이 발견된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두 가지 사실이 상호 규정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서로가 원인과 결과로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군산의 과거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군산의 현재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이고, 군산에 대해 애정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군산의 과거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탐정이 된다. 왜? 나의 연인이 끊임없이 내가 해독해야 할 기호들을 방출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라는 매력적인 수사처럼, 청춘남녀 사이의 연애는 상대방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사랑의 본질을 극명하게 압축하고 있는 명구도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관심에서 출발하여 상대방의 세계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상대방을 많이 알게 되고, 상대방의 매력이나 미덕을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깊은 사랑에 빠져드는 것이 동서고금을 초월한 모든 사랑의 운명이 지니게 되는 표정이나 문법이다. 또한 우리 민족의 섬세한 미의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상으로 알려져 있는 조선의 백자나 고려의 청자 또한 그것의 예술적 가치를 알 만한 감식안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한갓 그릇 이상의 매력을 지니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의 백자나 고려 청자도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예술 작품이지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하나의 사기 그릇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군산 출신의 학생들이 고향인 군산에 대해 애정이나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 또한 상당부분은 군산이라는 도시가 지니는 매력이나 가치를 많이 알지 못해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군산의 청소년들을 비롯한 군산 시민들에게 군산을 많이 알게 하고 그것을 통해 군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방법이나 전략은 무엇일까? 당연히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한두 가지 제언을 제안하는 것으로 그 질문을 감당하고자 한다. 이 자료집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4S1A6A2040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