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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진포대첩제 재현 추진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5-02-01 00:00:00 2005.02.01 00:00:00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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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선진 문화수준에 걸맞게 올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전개할 계획인 군산시는 오는 10월 진포예술제에서 「진포대첩제」 재현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진포예술제의 정체성을 홍보하고 진포대첩의 역사적 의의를 계승 발전시킬 목적으로 추진될 진포대첩제 재현 행사는 금강하구둑 일대가 왜구의 침탈행위를 통렬하게 섬멸시킨 격전의 현장이었음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로 마련될 전망이다. 진포대첩은 고려시대 4대 대첩의 하나로 고려조 우왕 6년(1380년) 8월 하순(양력 10월)께 지금의 성산면 창오리 창안마을에 위치한 鎭城倉(진성창)의 쌀을 약탈해가기 위해 침략한 왜구 500여척을 통렬하게 물리친 우리의 빛나는 해전사로 기록돼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평화로운 가을 어느 날, 쌀을 약탈해갈 목적으로 갑자기 쳐들어온 왜구 500여척이 금강하구 일대를 메웠고 왜구가 지나는 곳마다 약탈과 만행이 이어져 금강 일대 마을은 순식간 쑥대밭으로 변했다. 이에 고려조 조정은 당시 화통도감제조관인 崔茂宣(최무선)이 만든 화약병기와 병선을 동원키로 결정하고 上元師(상원사)에 羅世(나세) 장군을, 副元師(부원사)에 최무선을 임명한 후 병선 100척과 함께 금강하구로 급파했다. 병선의 수는 5대1에 불과해 수적으로 불리했지만 고려 수군의 화포와 화통의 위력은 대단했다. 고려수군은 왜군의 배들이 모두 묶여있는 점을 이용해 왜선의 측면으로 접근해 전열을 정비한 후 화포를 마구 쏘아댔다. 왜군 수병은 대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격침됐으며, 왜군들은 뭍으로 올라가 약탈을 일삼던 병력을 제외하고 모두 수장됐다. 당시 진포대첩의 대승은 오늘의 호국정신을 드높여 주는 역사적 의의를 지녔다. 진포해전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화약무기인 화포와 화통을 사용한 해전이었고, 당시 나라 재정의 대부분이었던 組稅(조세)를 지키는 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국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또 왜선 500척의 대병력을 물리침으로써 왜구의 침략을 근본적으로 차단한 점 등은 후손들이 길이 계승 발전시켜야 할 구국의 정신임에 틀림없다. 이에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에서는 올해 3천여만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진포대첩 재현행사를 펼쳐 진포대첩의 핵심지인 군산 금강하구 일대의 역사성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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