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이 발발한지 86주년을 맞이한다. 해마다 3월이 다가오면 군산의 하늘은 선열들의 뜨거운 애국애족의 정신이 되살아나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돌지만 정작 그 후손들은 선열들의 숭고함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채 아쉬운 시간들만 하염없이 보내고 있다. 이에 본란에서는 2회에 걸쳐 군산의 3.1만세운동이 지닌 의의와 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 5일 이른 아침 예정과 달리 갑작스럽게 발발할 수밖에 없었던 군산의 3.1독립만세운동이 지닌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일제의 강압을 떨치고 일어나 총 칼 앞에 분연히 맞선 한강이남 최초의 항일 거사이기에 군산의 3.1독립만세운동은 항일항쟁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당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을 기해 3월 6일 거사를 계획했던 구암산 내 영명학교(현 제일고 전신)․멜본딘학교(현 영광여고 전신) 학생들, 이들을 가르친 교사와 구암교회 관계자 등은 3월 5일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왜경들에 의해 위기를 맞았고, 지도자인 박연세 교사 등이 왜경에 끌려가 당황스런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구국의 일념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빛을 발했다. 3월 5일, 동이 틀 무렵 지체할 것 없이 만세운동을 시작한 항일독립만세 시위대의 행진이 시작됐다. 이러한 선인들의 3.1독립만세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후손들의 재현행사가 전개된지도 어언 십 수년이 흘렀다. 그러나 군산의 3.1독립만세운동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맴돌이만을 계속한다는 지적이어서 시급한 현안과제로 남아 있다. 군산의 선열들은 당시 목숨을 내걸고 일제의 강압에 맞서 숭고한 거사를 감행했으며, 이날의 항일독립만세운동은 인근 도시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구국의 일념으로 일어선 당시 군산의 선열들이 보여준 의기와 희생정신은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조금도 변함없이 살아 숨쉬고 있다. 단지 선열들이 남겨놓은 고귀한 정신을 후손들이 제대로 이어가지 못해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매년 3월 1일 군산의 3.5항일만세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군산구암교회를 중심으로 독립만세시위를 재현하고 있지만 정작 만세운동의 발생지인 구암산의 성역화는 뒷전에 밀린 상태이다. 국가기관들과 자치단체가 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려 구암산 성역화사업을 조속히 완수하고 이를 국가와 지역발전의 구심점으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치상태를 벗지 못해 큰 아쉬움을 던져주고 있다. 역사적 의의가 가득함에도 쓸쓸하게만 구암산은 수많은 발길들이 쉬어 가는 금강하구둑 인근 연안도로변에서 그 모습을 더욱 뚜렷이 나타내지만 성역화 사업과 조형미를 갖춘 연결고가 가설 요구 등이 외면 당한 채 시위 재현행사만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군산지역이 구심점을 잃고 가치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 마치 제 빛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구암산과 닮아 보인다. 이에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살려 조속히 구암산 성역화를 이루고, 이를 지역발전의 도화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외침이 2005년 3.1절에 군산의 하늘을 가득 메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