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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대 영 제국에서 로마 제국으로 가다

정해년의 첫 날 아침 오전에 대영제국의 심장 Heathrow공항에서 대로마제국의 심장 Fiumicino공항을 향해 B. A. 554편에 몸을 싣고 날아갔다!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7-01-31 10:57:18 2007.01.31 10:57:18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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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년의 첫 날 아침 오전에 대영제국의 심장 Heathrow공항에서 대로마제국의 심장 Fiumicino공항을 향해  B. A. 554편에 몸을 싣고 날아갔다!    2006년 12월 28일 K E 907편을 이용 런던으로 출국한 여정을 이어갔다.  지난세기인 1989년 6월에 Oxford 대학교의 레디 마가렛 홀에서 국제정치학 프로그램에 참석해 7일간 옥스퍼드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고 난후 새로운 세기의 2006년 12월 28일에 영국에 다시 간 것이다. 17년 6개월만의 일이다.  첫째 날  영국은 아직도 그들만의 고유 화폐인 파운드화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공항에서는 David 박사와 Ms. Song이 꽃다발로 열열이 환영하여 주었고, 공황에서 동남쪽으로 약 한 시간쯤 승용차로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숙소가 아프리카의 탐험가인 Livingstone House였다.      이 대 저택을 관리하는 일본인 히데오 씨의 설명에 의하면 Livingstone의 아프리카 탐험을 기념하기 위해 이 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중세기의 귀족이 된 기분으로 이 집에서 4박5일 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둘째 날  밝은 아침에 조기운동을 하려고 집과 마을을 살펴보니 전원주택가에 위치한 거대한 호텔 급 약100년 이상이 지난 중세기의 성을 닮은 고급 주택이었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수많은 종류의 수목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공원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머물러 본 중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Hampton Court Palace에 가보았다.  템스 강변에 있는 궁전으로 1514년에 완성된 건물인데, 빨간 벽돌의 정면 입구 앤 불린 왕비의 게이트 위를 보면 헨리8세가 선물한 진기한 색채의 큰 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템스 강의 조수의 간만까지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State Apartments에서는 약 500점정도 된다는 주로 이탈리아 화가들이 그린 종교화나 초상화, 당시의 호화스러운 가구들이 실내에 가득 차 있었다.  밤이면 헨리8세에게 살해된 하워드 왕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는 Haunted Gallery도 자세히 살펴보았고, 옛날 헨리8세의 사슴사냥터인 부시 파크에서 뛰어 놀고 있는 수많은 사슴도 볼 수 있었다.  햄프턴 코트 브리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바로 옆 강변식당의 창가 좌석에서 템스 강의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wine과 함께 점심식사를 아주 즐겁게 먹었다.  저녁 7시에 실시할 평화대회 연설문을 손질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이번 영국방문의 목적이었던 평화대회는 예정대로 오후7시 정각에 시작되었고, 약 20분간실시한 원어연설은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I am terribly sorry, I have such a short English.  But if you let me to speak Korean, I can speak very well.  Thank you very much!“  이 말로 연설을 마무리하니, 우뇌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지 지도자들은 “Very Good"이라고 하였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온 손님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Global 시대에 살아가려면 영어공부를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회를 마치고 다과시간에는 5개 국 어에 능통한 Joy Philippou, Ph.D.란 여성분과 대화를 많이 나누웠다. 그는 국제적인 심리학자로 존경스럽고 멋진 전형적인 영국 귀족의 냄새가 풍기는 미인 Madam 이었다.  영국평화대회는 이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끝을 냈고, 드디어 2층 나의 침실로 들어오니  그때서야 성취감과 아쉬움의 한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셋 째날  Cambridge로 갔다.  Philip Brouard라는 건축 디자인설계사는 런던대학 출신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의 아내는 “게이코”라는 일본여인이었다.  캠브리지 대학 곳곳을 자세히 설명했고 점심식사는 전통식 영국식사로 대접하여 주었다. 식사방법이 서둘러 약간 실수도 한 것 같다.  저녁에는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준비된 만찬을 데이비드 부부와 필립스, 게이코, 열 살과 열 두 살 된 아름답고 귀여운 딸 두 명과 함께 많은 화제로 대략 3시간 정도 보냈다.  열다섯 살 된 아들은 수련대회에 가서 집에 없다고 했다.  일본인 게이코 여사와 자매결연서에 상호 서명하고, 서로 교환한 후 숙소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넷째 날  기차와 버스로 런던시내를 관광했다.  나의 숙소에서 가까운 Bromley 역에서 기차를 타고 런던의 중심지인 Victory 역에서 하차 한 후에 Tour Bus 로 갈아타고 시내 여러 곳을 둘러본 후 대영박물관을 관람했다.  특히 한국관을 자세히 살펴보고 옆의 일본관, 중국관과 비교해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대한민국의 외교나 문화관광부의 무지와 무능을 한탄하며 못내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다섯째 날  잉글랜드의 새벽 공기를 마시며 새해 첫날을 대영제국에서 맞이하고, 로마제국의 심장인 레오날도 다빈치 공항을 향하여 출발하려니, “나그네의 설움” 이라는 우리가요가 문득 회상됐다.  런던 그린위지 표준시간으로 오전 10시 30분 B. A.554편은 런던의 히스로 공항을 이륙하였고, 약 2시간20분 후에 로마의 레오날도 다빈치(피우미치노)공항에 착륙했다.  이제 안내도 없고 완전히 홀로 다녀야 하는 자유여행이었다.  공항에서 Termini행 직행열차를 타고 가니 30분후에 테르미니 역 도착하였고, 역에서 예약된 Nord Nuova Roma Hotel로 걸어 가보니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542호 실을 배정받아 여정을 풀어 놓고 로마시내를 산책했다.  호텔 입구에 놓인 로마시가지 안내도 한 장을 가지고 무작정 걸어 가 보니, 포로 로마노까지 오게 되었다. 길을 따라 무작정 올라가니 콜로세움과 만났고, 저녁 무렵 어두움 속에서 길을 물어 숙소인 Nord Nuova Roma Hotel 로 돌아왔다.  새해 첫날은 대영제국에서 로마제국으로 이동한 날로 영원히 나의 추억 속에 남아있으리라! 정월 초 이튼 날  바티칸시 투어를 했다.  오전 8시에 비또리오 역 지하철 개찰구에서 하민철 이라는 가이드를 만나서 그와 함께 바티칸시의 박물관과 베드로 성당을 둘러보았다.  가이드는 구약성서를 거의 통탈했고, 물론 직업상 필요했겠지만, “천지창조”에 대한 그의 설명과 해설은 어느 성직자보다 훌륭하였다.  지구성의 곳곳에서 몰려온 바티칸 방문객을 보고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2시간 이상 기다린 후 겨우 입장하는데도 수많은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으니 참으로 알 수없는 일이었다. 바티칸 시국 안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한 후 베드로 성당으로 향할 무렵 이미 해는 저물어 버렸다.  그러나 중세기 교황의 위대한 권능을 실감했다. 초 사을 날  오전 8시 30분에 뗄 미니 기차역 24번 플랫 홈에서 가이드를 만나서 관광버스로 로마시내 곳곳을 관광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카타 콤 배>의 존재였고,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주검의 관들이 위치한 장소를 확인했다. 이어 베네치아 광장, 포로로마노, 콜로세움, 판테온, 진실의 입, 대전차경기장, 분수와 광장들 참으로 아름다웠고 황홀한 야경이었다.  하루 종일 12시간 정도 걸어 다녀서 발과 다리도 아프고 피곤한 몸을 겨우 지탱하여 숙소 근처의 아리랑식당(한국인 운영)에서 우리음식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초 나을 날  드디어 이태리 남부 환상의 투어를 설레는 가슴으로 맞이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7시에 전세 낸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3시간 30분 후에 폼페이 유적지에 도착했다.  2300년 전에 건설됐다는 폼페이는 놀랍고 신기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당신 폼페이인은 평균 키가 1m40cm 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 거대한 건축물과 과학적인 생활양식을 가출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기 한이 없었다.  폼페이의 최후를 지켜보며 즐겼던 베수비오 산은 지금도 아무 일도 없는듯 얌전한 모습이 지겹고 징그럽게 보였다.  하늘이 만드셨다는 아말피 해안과 마을은 내가 죽어서 천당에 간다면 천당이 이런 마을일까 착각 될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 이었다. 이 순간 이 마을에서 살 수만 있다면 살고 싶은 아말피, 영원히 잊지 못 할 것 같은 이상향-Amalfi 해변과 마을!!!  못내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그네이기에 다음 행선지인 Sorrento로 향하였다.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발상지 정말로 인간이 언어로는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조그마한 소 도시-기암 절벽위에 건축된 훌륭하고 아름다운 저택들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나폴리 만의 인간사회!!!  폼페이 유적지를 안내했던 ALFONSO DELLI FRANCI(나폴리 인)이 마지막으로 직접 불러 주었던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음성은 영원히 나의 귓가에 남으리라! 초 다섯째 날  이탈리아의 마지막 날.  밀라노와 피렌체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귀국하여야 할 판국이니, 못내 아쉬운 마음 그지없으나, 비행탑승시간이 오후라서 로마시가지를 또 다시 걷기로 하고 숙소에서 나와 번화가인 상가를 둘러보니 세계의 명품가게가 거의 전부 모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더 비싼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세금을 우리나라보다 많이 내기 때문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번 여행을 통하여 평균 키 140㎝인 폼페이 인이나, 160㎝인 로마인의 찬란한 문물을 우리는 음미하고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잘 보존 유지하여 후손들에게 넘겨줄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로마여! 안녕! 나의 조상의 유물과 나의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아내와 자식이 사는 곳-나의 흔적이 쌓여 있는 곳-영원한 나의 조국 (대한민국) 으로 간다!  오후 7시 40분발 K E 928 에 탑승하니, 이곳이 내가 존재할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 보니 이미 나의 조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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