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복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1969년 결혼해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다보니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열정적인 성격을 타고 난 지라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한복 만들기라면 가능할 것 같아 시작했어요. 하지만 마땅히 배울 곳이 군산에는 없었기에 서울에 있는 한복학원으로 일 년 동안 매일 배우러 다녔습니다. 이후에 남의 밑에서 열심히 한복을 제작하면서도 꾸준히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했어요. 그러다 80년대 중반에 남편의 협조를 받아 지금의 주덕주단을 열고 본격적인 한복연구에 몰입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작품을 올리는 행운을 거머쥐었습니다. 38년여 세월을 한복과 함께 살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밤새워 바느질을 하고도 피곤한 줄 몰랐고, 패션쇼에 올릴 작품을 만들 때는 며칠씩 잠을 못자도 기운이 펄펄 났죠. '한복'은 제게 꿈을 주었고,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 그동안 한복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셨죠? = 86년 아시안게임 초청 디자이너 한복쇼 참가 이래 한복 복식 문화 2000년 전 참가, 2002 월드컵 성공개최를 위한 한일공동 패션쇼 , 2005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한복전시 출품, 2005 진주 세계 의상 페스티발 패션쇼 참가, 제9회 한복의 날 패션쇼세계 한복 페스티발 패션쇼 참가, 2006 월드컵 기념 초청 한복 패션쇼(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패션쇼(한불 문화교류원), 육영재단 38주년기념 육영수 여사 의상재현전 전시 및 초청패션쇼 등 다양한 패션쇼에 참가,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인들에게 선보이고, 각국의 교포들에게는 한복을 통해 애국심을 불태우는데 앞장섰습니다. 이처럼 10여년 동안 50여 차례가 넘는 한복 패션쇼를 진행해 왔습니다. 특히 웨딩 한복 연구제작을 통해 새로운 한복의 시장을 열고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내년에는 북한을 방문, 남한의 한복을 보여줄 계획입니다. * 한복패션쇼를 통해 얻는 의미는? =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닌 우리 정신이고 문화이며 과학입니다. 정확한 치수와 과학적인 계산을 요구하는 옷입니다. 한복제작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또한 한복 패션쇼를 개최하는 것 역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쇼를 통해 일반인들이 한복의 미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기쁨을 얻습니다. 패션쇼에는 전통한복과 민간한복을 포함한 개량·웨딩한복까지 선보이는데요. 이 쇼를 통해 과거 우리선조들의 얼과 생활상, 우리 한복의 미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한복은 크게 궁중한복과 민간한복으로 나뉘어 계승되어 왔습니다. 특히 궁중한복은 임금과 그 가족들의 부귀영화를 부르는 옷으로 금색과 홍·황 등 오방색(청, 적, 백, 황, 흑)위주로 제작했으며, 일반 서민들은 어떤 색상도 가미하지 않은 흰옷과 감물과 먹물로 염색한 옷만을 입도록 차별을 두어 황실의 안위만을 추구했습니다. 수의복 역시 궁중에서는 명주로 제작하고 서민들은 삼베로 만들어 입었죠. 단 일반백성들이 결혼식 날에만 원삼을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해줬습니다. 이렇게 한복을 통해서 역사의 정치상과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복에서 신분의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한복민주화라 할까요? * 한복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느낀 어려움과 보람은? = 내가 사랑하는 '한복'을 사람들이 외면하고 제대로 대접 하지 않을 때 마다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양장은 각종 지원을 받아 다양한 패션쇼를 통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반면, 한복은 양장보다 대중성이 떨어져 지원이나 투자를 받지 못했어요. 패션쇼에 참가할 때마다 모델 출연료를 비롯한 각종 비용들을 사비로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죠.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각종 영화 작업에 참여, TV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여러 형태의 한복을 소개해 대중들이 우리의 전통 복장에 많은 관심을 갖게 한 점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왕의 남자’ 광대패의 화려한 색동옷, ‘궁’의 여주인공이 입었던 변형된 퓨전 한복, ‘대장금’의 우아한 궁중복 및 다양한 평상복 등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아도 전혀 손색없는 기품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보람은 그동안 한복을 제작하면서 금박 수놓기를 해결하지 못해 고민했는데, 몇 해에 걸친 연구 끝에 금박기술을 터득, 이를 전국의 후배들에게 무료로 전수한 것입니다. 이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한복제작 비용을 절감토록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단일화 할 수 있었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 우리나라 한복계 명장이 부산에 2명, 대구에 2명, 광주에 1명 총 5명 있습니다. 경상도 지역에는 4명이 있나 있는 반면, 광주를 포함한 전라남북도는 단 1명 밖에 없습니다. 도내 인적자원이 매우 부족한 실정인데, 부족하지만 제가 명장이 되어서 도내 후배양성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특히 웨딩한복의 명장이 되어서 한복시장의 새 판로를 개척하고 결혼문화를 바꿔 놓는 게 저의 남은 과제입니다. 특히 우리 옷을 지을 후배들을 양성해서 군산시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이지요. * 시와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먼저 군산시와 각 기관들이 한복패션쇼를 군산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복패션쇼가 2008년 군산 방문의 해를 맞아 관광객들과 군산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관광수입원일 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총 동원했으면 합니다. 또 시민들에게 바라기는 한복을 사랑하고 애용해달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대학에서도 한복 수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 명절이나 결혼식 때마저도 한복 입는 사람이 줄어들어 갈수록 일상에서 한복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한복이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복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 여인들은 평생에 기모노 1벌을 소장하는 것을 자부심과 소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모노 한 벌이 2000만원에 입혀주는 사람의 수고비만 350만원이나 됩니다. 값비싸고 혼자 입을 수도 없으며, 불편하기만한 그 옷을 일본 여인들은 애지중지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70~80년대만 하더라도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나 기념할 만한 자리에는 반드시 한복을 입었는데, 최근에는 결혼식 때마저 한복을 빌려 입는 추세입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자란 아이와 한복을 입고 자란 아이는 분명 다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고, 한복을 통해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몸에 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면한 '한복'을 세계가 먼저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한복을 역수입하는 그런 미래가 다가올까 염려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