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학생들이 싸늘한 시신이 돼 돌아와 동네사람들을 비통에 젖게 만든 장면> 전북오페라단(단장 조시민) 제6회 정기공연작으로 무대에 올려진 창작오페라 고은의 만인보 제3편 ‘들불’ 은 오페라를 자주 대하기 쉽지 않은 지방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명 성악가의 출연도, 크고 화려한 대형 무대의 웅장함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방 오페라무대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인 이번 무대는 관중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군산출신 고은 시인의 원작 ‘만인보’를 창작음악시(詩)극으로 꾸며 2005년 ‘제1편 내사랑 우리의 땅’ 과 2006년 ‘제2편 귀향’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무대에 올린 ‘제3편 들불’은 한국의 근현대사 가운데 1960년대 자유당시절의 4.19민중혁명과 5.16군사혁명시절 시련을 겪어야 했던 민주화의 열망을 그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게 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부정 부패에 당당하게 맞서 4.19 혁명을 통해 봉기하다 5.16 군사정권에 의해 쓰러져간 민초들의 희생과 한을 주제로 한 ‘들불’은 무참히 짓밟힌 당시 민주화 열망을 극중 신호덕(정수희 분)과 김용실(이성식 분)의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표현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당시 민중들의 정서를 왜곡 없이 드러낼 의도로 삽입했다는 트롯가요를 클래식화한 부분은 관객들과의 친밀도를 더하기에 충분했다. <출연자들이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트롯가요 유정천리를 부르는 장면> 조시민 총감독은 창작오페라 ‘만인보 제3편 들불’의 관객들이 중앙무대에서도 듣지 못한 오페라 무대에서의 트롯을 들게 된 최초의 관객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열기 속에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희생되는 어린 봉오리들을 극의 흐름으로 다뤄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무대분위기에서 당시 일반인들의 애환을 표현한 순간에 불려진 전통가요 ‘유청천리’ 는 그나마 약간의 흥겨움을 느끼게 했지만 금새 슬픈 곡조의 트롯으로 바뀌며 극중 전체적인 무대에 충실했다. 또 4.19 혁명에 참가해 봉기하다 희생돼 한줌 뼛가루로 돌아온 아들 ‘한수’를 애타게 부르는 아버지(김원준 분)의 절규에 눈시울을 붉히는 이도 있었다. 민주화의 열망은 군사정권의 시련기에도 민족의 가슴 속에 내재해 이어졌음을 표현한 ‘들불’은 여원경 씨가 구성을 맡았고 올해 아시아 합창 우수작곡가 7인에 선정된 허걸재 씨가 작곡과 지휘를 맡았다. <독재는 안돼라고 외치며 절규하는 순간의 장면> 원작자 고은 시인이, 전편에서도 그러했듯,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된 ‘제3편 들불’은 전북오페라단이 ‘만인보’ 를 총 7편의 장기적인 역사공연물로 제작하며 무대에 올린 초반을 마감하는 길목이어서 남은 4편의 시(詩)극이 주목받게 될 전망이다. 부족한 지금의 여건은 훗날의 영광을 위한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으로 승화시키며 제작됐다는 창작오페라 ‘만인보.’ 이 공연이 매년 계속되며 해마다 지방예술문화를 한 단계씩 끌어올리는 모습으로 다가서리란 희망을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한편 전국 2000여개 공연 중에서 수편만을 골라 녹화 방영하는 아트TV가 이번 공연을 프로그램에 편서하기 위해 전 장면을 녹화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