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신문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문화

이순신 장군, 12일간 ‘선유도’ 머물러

신선들의 휴식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군산의 명소 선유도(仙遊島).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2일간 머물며 승전 장계를 올리고, 아산 본가의 처참한 소식도 들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08-04-28 09:23:28 2008.04.28 09:23:28 링크 인쇄 공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28일  탄신 462주기 동상 - 동상 기념사업 전개 필요      신선들의 휴식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군산의 명소 선유도(仙遊島).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2일간 머물며 승전 장계를 올리고, 아산 본가의 처참한 소식도 들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흔히 이순신 장군의 역사는 전남 목포와 여수 그리고 남해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만 유적과 동상들이 넘쳐나 이순신 장군의 역사는 전북 서해안과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은 명랑해전 5일 후인 1597년 9월 21일 고군산 군도 선유도에 상륙했다.   명랑해전 직전 당시 극심했던 당파 간 다툼으로 희생돼 파직된 후 감옥에 갇혀있다 한 달여 만에 특사로 풀려나 도원수 밑에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통제사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됐다.   하지만 이순신은 남아있던 전함 12척에 한척을 추가해 겨우 13척을 이끌고 9월 16일 명랑해전 울돌목(해남과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 아래) 전투에 나선다.   전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왜장 마다시가 이끄는 133척의 대규모 왜선과 맞선 이순신 장군은 지형을 이용한 전투를 벌여 승리를 이룬다.   세계 해잔사에 길이 빛나는 그 유명한 울둘목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한 후 서해안으로 들어와 북으로 전진하던 이순신 장군은 부안 위도를 거쳐 전투 5일 후 선유도에서 닻을 내린다.   그리고 12일간 선유도에 머물다가 10월 3일 선단을 남쪽으로 돌려 변산반도를 지나 법성포방면으로 내려갔다.   이순신 장군이 선유도에서 머무는 동안의 행적은 난중일기에 기술돼 있다.   이곳에서 명랑해전의 승전 장계를 꾸며 조정에 올린 이순신 장군은 나주 목사와 무장 현감 등을 만났고, 전투에 지친 심신을 돌보며 다음 전투의 전략 구상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아산 본가가 왜적들로부터 분탕질 당해 잿더미가 됐고, 아들 면이 왜적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통해 했으며, 아들 회를 올려 보낸 후 잘 도착했는지를 걱정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군산의 명소인 선유도를 한층 더 널리 알리기 위한 이순신 군 상 제막 등 다양한 사업의 전개가 고군산 국제해양관광단지 조성과 더불어 지역의 역사성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여론이 해마다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김석주 기자>  이곳에서 명랑해전의

※ 군산신문사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문자가 잘 보이지 않을 경우 여기 를 클릭해주세요.

카피라이터

LOGIN
ID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