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예요. 친정부모님 보다 더 저를 사랑해주시는 시부모님들이 계시고, 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남편과 아들 휘성이까지 있으니까요. 시댁 군산이 고향 보다 포근합니다.” 귀순배우 김혜영(35) 씨의 시댁 자랑이다. 지난해 11월 군산출신 영화배우 김성태(38) 씨와 결혼식을 올린 혜영 씨는 지난 6월 12일 결혼 7개월만에 3.18kg의 건강한 아들을 얻었다. 늦은 나이의 출산이라 걱정이 컸지만 남편 성태 씨와 시댁식구들의 무한사랑 덕분에 무사히 득남했다. 추 추석 전날인 21일 오후 9시. 소룡동에 위치한 혜영 씨 시댁에서는 시아버님의 고향인 전남 풍습에 따라 차례를 올리고 있었다. 남편 성태 씨와 함께 시아버님을 돕는 혜영 씨의 행동에 정성이 깃들었다. “시댁에 왔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하신다. 며느리가 아니라 '우리 둘째딸‘이라고 부르신다”며 자랑이다. 차례를 지낸 뒤 한켠에 앉아 능숙한 폼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혜영 씨가 그제서야 엄마로 보였다. 백일을 갓 넘긴 혜영 씨의 아들 휘성이는 살이 포동하게 올라 사랑스럽다.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며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문 휘성이를 바라보는 혜영 씨의 눈에 행복이 그득하다. 아들을 품에 안은 혜영 씨는 "너무 신기하다"며 “내가 낳은 게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다”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안정감과 행복을 느껴 본지가 얼마던가. 태어나 처음인 것 같다는 혜영 씨의 말에 고단한 삶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1998년 가족과 함께 귀순한 김혜영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1995년 평양연극영화대학 연극배우과를 거쳐 2000년 동국대 연극영상학부로 편입, 졸업했다. KBS 2TV ‘개그콘서트’ 꽃봉오리 예술단을 통해 얼굴을 알렸으며, SBS TV ‘덕이’, KBS 1TV ‘대추나무사랑 걸렸네’ 등에 출연했다. 가수로도 활약하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담은 5집 음반까지 발표했다. 이후 드라마와 뮤지컬을 비롯해 가수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꿈에 그리던 결혼도 했다. 그러나 곧 파경을 맞고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듯 했다. “이젠 혼자 살겠다” 다짐했던 그녀에게 성태 씨가 나타난 것. 악극 '홍도야 울지마라'에서 호흡을 맞추며 결혼까지 골인하게 됐다. 혜영 씨의 남편인 김성태 씨는 1972년 군산에서 태어났으며, 문창초와 동중, 군고, 백제예술대학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뒤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 '마을금고 연쇄습격사건', 드라마 '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아왔다. 교제 당시 이혼의 아픔으로 인해 또다시 마음 열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 혜영 씨와는 달리 남편 성태 씨는 "나는 (이혼사실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 부모님을 만나 뵐 때도 편했고 나이가 있다 보니깐 지금 사귀면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인이 '형님, 기사 나가도 돼요?'라고 묻더라. 그렇게 해서 기사가 나갔고 그 뒤에 애가 생겼다. 그렇게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됐다"고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혜영 씨는 "정말로 남편이 데이트하면서 나한테 전혀 과거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내 과거, 궁금하지 않냐'고. 그랬더니 다 안다고 대답하더라. 아픔이 있었다는 것도 알더라"고 말했다. 이에 성태 씨는 "뭘 재고 따지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것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혜영 씨는 “남한에 오기까지 꼬박 1년8개월이 걸렸다. 친척집에 놀러가자는 아버지 말만 믿고 중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 딸들의 재능을 북에서 썩히기 아깝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단행했던 것”이라고 귀순 동기를 설명했다. 1998년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하루도 맘 편히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밀려드는 스케줄 만큼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어느 한 곳 마음 붙일 만한 곳이 없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느 곳이 옳은 길인지 모른채 메니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까지 느껴졌다고. 그렇게 지쳐갈 무렵 결혼을 통해 마음을 쉬려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얼마 뒤 이별을 맞이했고, 마음의 문은 더욱 굳게 잠겼다. 무거운 혜영 씨의 마음의 빗장을 손쉽게 풀어버린 성태 씨. 그는 혜영 씨의 노래를 듣고 마음을 빼앗겨버렸다고. “콩깍지가 씌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 내가 혜영 씨의 진정한 인생 메니저가 되어주고 싶었다”며 애정을 표현했다. “귀순한지 벌써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가족이 아닌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몹시 외로웠다.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내 인생을 믿고 맡길만한 성태씨와 동반자의 길을 걷고, 성태 씨가 나의 안내자가 되어줘 내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혜영씨. 인터뷰 도중 혜영 씨에게 용돈을 찔러주는 시누이, ‘형님’이 생겨 “동지가 생긴 것처럼 든든하다”는 동서, 친구 같은 도련님과 며느리를 ‘딸내미’라 부르는 시부모님이 혜영 씨의 세상풍파를 막아주는 방패막이가 되어 그녀의 인생이 순풍에 돛 단 배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