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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군산시립교향악단’

1990년 11월 19일 창단연주회를 시작으로 군산시민의 정서와 문화예술을 선도해 온 군산시립교향악단이 지난 3일 100회 기념연주회를 갖고 창단 20주년을 기념했다.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11-11-25 09:23:05 2011.11.25 09:23:05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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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예술 선도…환황해권시대 문화사절단 역할 수행   1990년 11월 19일 창단연주회를 시작으로 군산시민의 정서와 문화예술을 선도해 온 군산시립교향악단이 지난 3일 100회 기념연주회를 갖고 창단 20주년을 기념했다.   그 동안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다양하고 독창적인 ‘기획연주회’와 지역 곳곳에서 개최한 ‘시민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로 지역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온 군산시향.   군산시향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의 ‘교향악 축제’를 비롯해 지자체의 초청연주회 등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문화예술의 도시 군산을 알리는데 큰 몫을 담당해왔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군산시향의 역할과 역사 등을 다뤘다. <편집자 주>   ◇군산시향의 뿌리…박판길 초대 지휘자 그리고 ‘산노을’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 넘어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이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 듯한 마음/ 아 아 산울림이 내 마음 울리네/ 다가 왔던 봉우리 물러서고/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군산시향 초대 지휘자인 고 박판길 작곡가가 만든 가곡 ‘산노을’이다. 월명공원을 놀이터 삼아 자란 그는 훗날 경복고 음악교사가 됐고, 제자이었던 유경환 시인이 1972년 작사한 시에 곡을 붙여 날개를 달았다.   산노을은 외로움과 그리움, 쓸쓸함과 적막을 지닌 사단조 멜로디에 4박자와 5박자를 섞어 만든데다 음역이 넓어 부르기 까다롭고 쉽지 않은 곡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듣는 이에게는 마음 한구석에 작은 여유와 평안을 안긴다. 한국가곡사의 중요인물인 박판길 선생이 바로 군산시향의 뿌리다.   1929년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기독교 집안은 아니었지만 개복교회에 어려서 출석하면서부터 피아노를 쳤고, 성가대원으로서 피아노 반주를 맡아 활약하며 음악과 가까워졌다.   군산중앙초(당시 보통학교) 시절엔 밴드반 반장을 지냈는데 이 때 지도교사가 서울음대 교수를 지낸 작곡가 정회갑 선생이다. 이후 그는 군산중(6년제)에 진학해서도 밴드부 지휘를 도맡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군산고와 경복고 등지에서 음악교사로 교편을 잡다 서울대 음대에 진학한 뒤 미국과 스페인 유학길에도 올라 견문을 넓히고 돌아 온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서정성이 강하고 한국인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우리 고유의 가곡을 만드는 일이었다.   곧바로 그는 경복고 재직시절 가르쳤던 유경환 시인을 찾아가 작사를 부탁했다. 유 시인으로부터 시를 받아 든 그는 “월명산에서 어릴 때 본 낙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든 쓸쓸함과 그리움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이 곡은 1974년 테너 안형일 선생의 독창회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됐고, 테너 신영조 교수가 호소력 짙게 불러 유명세를 타게 됐다. 물론 그 이전에 김호성·김성길·김대근·엄정행 등 내로라는 이들이 다 즐기는 레퍼토리였다고 한다.   그렇게 작곡과 연주, 후배양성으로 중앙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박 선생은 1979년 서해방송에 근무하던 김병남 현 본사 회장을 찾아와 군산시향 창단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에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던 김 회장을 비롯한 음악계와 지역 인사들이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창단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대로 묻히는 듯 했다.   그러나 박 선생의 의지와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쌓여간 세월은 오히려 불쏘시개가 되어 창단의 불을 지폈다. 만 10년만인 1989년 충남대 예술대학장이었던 그는 다시 군산을 찾았고, 창단의 의지를 새롭게 밝혔다. 이에 당시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조성돈 씨와 조덕성 씨가 뜻을 더했고 김인식 시장과 운영위원회의 도움으로 1년 후인 1990년 8월 29일 드디어 창단에 성공하게 이르렀다.   ◇군산시향의 ‘어제와 오늘’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990년 11월 19일 오후 7시 군산시민문화회관은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이들은 시민회관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회상한다.   군산시향의 창단 기념 연주회를 축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과 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연주회는 각 출입문을 활짝 열어 둔 채로 진행됐다.   계단은 물론 로비 전체가 객석이 됐지만 불평하는 이 하나 없었다. 이는 박 선생의 뜻이었는데, 대중과 함께 호흡할 때 클래식이 생명력을 얻는다는 그의 평소 지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근엄한 연주회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 지휘자들과는 사뭇 다른 처사에 관객들은 환영의 박수로 화답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청중을 압도했고, 섬세한 그의 테크닉은 청중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렀다. 특히 지휘봉 하나로 악단을 몰입시키는 그의 노련함과 우아함은 어디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한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3일 같은 장소에서 정낙복 상임지휘자의 지휘 아래 100회 기념연주회가 시작됐다. 첫 번째 손님으로 신수정 서울대 초빙교수가 올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두 번째 손님은 군산시향과 더불어 지방 오케스트라의 대표주자로 뽑히는 전주시향. 전주시향은 피아니스트 ‘도리안 렐작’과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으로 군산시향 100회 정기연주회를 축하했다.   이날 정낙복 상임 지휘자는 “군산시향은 이번 100회 기념연주회를 발판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발전하는 교향악단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금까지 시민 여러분들이 보내주셨던 많은 관심과 큰 사랑을 앞으로도 부탁드린다”고 인사한 뒤 연주를 시작했다.   총 76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군산시향은 초대 박판길 지휘자 이후 여덟 번째 지휘자로 위촉된 정 지휘자가 2008년 3월부터 이끌고 있다.   군산시향은 중국 청도시와의 교류 음악회를 통해 서해안 경제 중심지인 환황해권 시대에 걸맞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수행하고 국내 정상의 오케스트라임을 확인했으며 앞으로도 교향악 발전의 선구자 역할을 다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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