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피면 출신의 애국지사 춘고 이인식 선생의 열정과 넋을 기리는 추념행사가 15일 월명공원 기념동상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임피중 총동문회원 및 모교 학생 등 60여명의 참석해 시대의 선구자요 민족의 스승인 이인식 선생의 숭고한 교육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와함께 행사를 마치고 서수면 서수리 호산부락에 있는 이인식선생의 고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춘고 이인식 선생은 항일독립운동이 열린 1919년 3월 1일 보성고보 대표로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했고, 시위 군중을 미국공관 쪽으로 유도하는 선봉에서 활약했다. 3월 5일 밤 송현동 자택에서 학생대표들이 모여 협의 중 들이닥친 일본경찰에게 체포(총 43명)됐으며, 10개월의 징역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출감한 그는 25만여평의 가산을 정리해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으로 거금 8000원을 헌납하기도 했으며 주로 동 만주 지역에서 임정요인과 연락, 정보수집과 국내에 잠입해 자금조달 등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또 숱한 정치계의 손짓도 있었지만 문맹률 90%의 당시 암울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계에 투신했다. 새 조국의 문맹퇴치 운동에 첨병으로 나선 것이다. 1949년 11월 11일 일인이 경영하던 이엽사 농장자리에 중학원이란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했으며 1952년 1월 18일 ‘임피중학교’라는 교명으로 정식 공립중학교 인가를 받았다. 6.25전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이 없는 임피중이 폐교 위기에 놓였던 1953년 11월 15일 그는 임피중 교장으로 부임해 우선 학생 모집에 나섰고, 훌륭한 제자 배출에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