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음식점·호텔·예식장·커피점, 경찰서 등이 있었던 준(準)행정타운 <옛 군산경찰서 부지가 현재는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이 들어선 중심지로 부상한 곳이 중정길이다. 이곳은 금융·호텔·경찰서·통신시설(전화국: KT) 등이 밀접한 준행정타운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단다. 삼성생명의 뒷골목은 곱창단지로 한때 각광을 받았지만 원도심의 쇠락 등으로 지금은 인적이 뚝 끊긴 한적한 공간이 된지 오래다. 동인전자 가게와 기아대책본부 사무실, 이미영 미용실, 들꽃 향기(찻집) 등을 거치면 교보생명 뒷길 주변의 군산우체국과 케냐 커피숍 등이 있다. 과거에는 인근의 그랜드 호텔과 동원예식장, 대한항공 군산지점 등이 영업(또는 입점)을 했던 곳이어서 밤이면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뤘고 낮에도 인파들이 몰렸단다. 군산우체국의 시작은 대한제국에서 파견된 옥구감리서의 우체국과 조계지 내의 일본 우편국 군산출장소로 이원화돼 있었다. 군산우편국은 1905년 전신업무를 시작, 일본영사관의 바로 앞에 일본 우편국을 신축, 이전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영화동의 우편국(지금 우체국)이다. 이 우편국은 해방 후 화재로 당시 대한청년단 사무실로 쓰이던 중앙로 1가의 미나카이 백화점 자리로 옮겨왔는데 이곳이 현재의 군산우체국이며 그 자리에 새청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보통 우체국 골목길로 통하지만 새주소에는 '거석길'로 되어 있다. 이 골목길의 오래되고 인기 있는 사랑방은 케냐 커피숍. 케냐 커피숍은 약 20년 전 강희순 사장(여․ 56)이 핑계 있는 날이란 건물을 구입, '할리스'커피체인점을 서울 압구정점에 이어 전국 두 번째 문을 열어 유명세를 탔다. 강 사장이 이곳을 주목했던 것은 군산시청과 법조타운, 준행정타운 등이 연결되어 있는 공간인데다 젊은이들의 주 활동 무대였다는 점 때문. 이곳 주변에는 당시 동원예식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인근의 그랜드호텔(지금의 서해대 생활관), 대한항공 군산지점 등이 입주, 당시 하루 매출만도 60~70만원에 가까웠을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하지만 군산우체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 및 공공기관들이 이전하는 바람에 상권이 위축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음식점과 커피점을 겸하는 업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다시 말해 도내 최초의 인도음식점인 '인디아'를 개점하기 위해 조만간 내부 수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블록에서 20~30m만 극장가 골목방향으로 내려가면 서해대 생활관(그랜드 호텔)을 거쳐 옛 경찰서 부지와 통신시설(전화국: KT)에 다다른다. 근대적 의미인 군산경찰서의 출발은 이원체제였다. 대한제국은 경무서라고 했고, 일본은 경찰서라 불렀다. 물론 처음부터 이곳에 경찰서가 들어선 것은 아니었고 개항장인 군산의 모든 일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사무를 집행하게 된 곳은 옥구 감리서의 경무서였지만 거류지회에서 운영하는 경찰조직은 별도로 운영됐다. 영사관 시절 일본경찰서는 영사관 내에 있었으나 영사관이 이사청(통감부)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통합된다. 일본은 1908년 국권을 사실상 빼앗아 대한제국의 경무서를 병합한 후에는 우편국에서 멀지 않은 영화동 여성회관 인근에 경찰서 단독 건물을 건립, 이전한다. 하지만 군산의 일본인 경찰서는 이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1910년 합방과 함께 군산의 중심도로인 중앙로1가가 끝나는 구경찰서 자리로 신축, 이전한다. 당시에는 군산에는 군산경찰서와 순찰 주재소 8곳이 운영됐고 시설노후와 행정서비스 문제 등을 이유로 1993년 9월 경암동 현 청사로 옮긴다. 이곳은 부지만 남긴 채 공공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고 인근에 개복동 파출소와 옛 KT군산지점만 남아 있다. 경찰서 뒷편에는 60여년이 넘은 군산성광교회와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현장 등이 있다. 62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광교회(담임목사 양태윤)는 70~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지역 내 기독교장로회(기장)에서 가장 큰 성장을 하고 있는 교회다. 이 건물과 거의 붙어있었지만 지금은 개복동 극장가 교복판매업소 단지로 이전한 '신흥모자'는 군산 최초의 모자점이다. 이 가게는 고 송규헌옹이 1947년 3월경 창업한 곳으로 현재 송씨의 딸 재희씨가 운영,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 참사와 성매매 방지법 제정 <화재가 난 개복동 유흥주점은 현재 철거된 상태다> '2002년 1월29일 개복동 유흥주점에서 일어난 불로 이곳에서 근무하던 20대 여종업원 14명이 숨졌다. 이에 앞서 2000년 9월19일 대명동 성매매업소에서도 여성 5명이 화재로 희생됐다.' 이들 사건이 군산에서 연이어 발생하자 지역여성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적극 나서 사회적인 의제로 삼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영향으로 오늘의 성매매방지법이 탄생된 것이다. 올해로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 12돌. 지난 1월28일 오후 화재참사현장에서 추모시 낭독과 헌화 등의 행사와 함께 화재현장에 여성인권센터의 건립을 추진키로 결의했다. 이에 앞서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등 모두 30여개 단체는 2013년 4월 군산개복동 여성인권센터 건립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여성들의 희생을 형상화할 수 있는 조형물 설치를 계획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시는 지난해 3월 10년 넘게 흉물스럽게 방치했던 개복동의 2층짜리 참사현장을 철거하고 시 소유의 땅에 미니 잔디광장을 만들었다. 화재당시 대가․ 아방궁 유흥주점이었던 이 건물은 전기합선으로 불이나 여종합원 14명과 남자 지배인 1명 등 모두 15명이 숨졌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것은 성매매도 문제였지만 감금상태에서 질식사한데다 취업(노예)각서 등에 반인권적인 행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