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중심지이자 맛의 거리… 영화통닭․ 안젤라분식 등 즐비 주변에 우체국, 전매청 등이 있었던 오늘날의 군산의 모습이요, 행정타운의 중심지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앙로1가 옛 군산시청청사였다. 1920년대 군산의 시 영역이 확대되면서 수덕산의 군산 부청사가 시내 중심권과 멀어지면서 이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28년 11월 새로운 청사가 준공됐다. 이 건물의 본관은 적벽돌로 된 2층 건물로 남향의 일자형 건물이었고 뒤쪽마당 한 가운데에 부속건물인 숙직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하지만 건물 노후와 도시팽창으로 새로운 청사의 필요성이 생기면서 1997년 1월 오늘의 조촌동 청사로 이전, 약 100년의 영광은 사라지게 된다. 대우건설이 이 땅을 매입하고 청사를 건립하는 조건으로 이전했지만 대우그룹의 해체 등 여건 변화로 로데오 건물인 철골구조물만 남긴 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앙로에서 구영4길의 첫 집인 미다원과 동남슈퍼를 거쳐 삿갓다방, 영화시장, 구화당한약방 등으로 이어진다. 중앙로에 있는 기업은행과 인접한 건너편에 있는 미다원. 군산시간여행의 별미 전통문화체험장인 이곳은 1935년 1월 사용승인인 난 일본 건축양식이다. 1961년 12월 국가보존등기가 됐던 점을 고려해볼 때 적산가옥인 일본식 건축물로 추정되지만 그동안 여러 사람을 거쳐 최근 송미숙 사장이 건물을 인수해 전통문화체험장으로 탈바꿈했다. 미다원은 십전대보탕, 녹차, 쌍화탕, 황차, 대추차, 오미자차, 국화차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지금의 미다원을 만든 송미숙 사장은 한복입기체험, 전통예절, 우리음식체험 등을 통해 전통문화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구영4길에서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곳은 영화시장과 그 주변 맛집. 한때 이곳은 맛의 거리요, 멋의 거리였다. 여고생과 분식 애호가들로 왁자지껄했던 거리였단다. 주변 30여 곳이 뭉친 영화시장은 80년대 까지만도 상당한 상권을 유지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행정타운과 미군감축 등이 이어지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곳은 각종 탕이나 일반 음식 등 정통 맛의 거리보다는 분식과 야식에 관한한 최고로 통한 골목이다. 외식업계에 널리 알려진 곳이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영화원, 군산의 2대 통닭 중 하나인 영화통닭,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분식집인 안젤라분식 등이다. 영화시장의 인근에 있는 중국음식점인 영화원의 주 메뉴는 물짜장과 짬뽕. 채소와 해물을 넣고 춘장대신 녹말과 고추기름을 사용한 물짜장은 칼칼하고 얼큰한 맛을 자랑한다. 짬뽕 역시 해물과 고기를 넣어 만든 얼큰한 음식으로 주변 식도락가들의 입을 자극하고 있다. 국제반점의 물짜장도 단골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원통닭과 군산의 2대 통닭을 자랑하는 영화통닭은 동네통닭 혹은 시장통닭을 만든 통닭집으로 수십년동안 검은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로 포장돼 통닭 애호가들의 야식을 책임졌단다. 뽀빠이 감자탕과 장터 왕족발 등은 독특한 맛을 자랑하며 군산의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시장에는 건어물 등의 가게 10여 곳이 옹기종기 모여 영업하고 있으나 과거의 영광은 사라진 준 상설시장이다. 안젤라 분식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분식집으로 여중․고생들의 입맛을 녹인 대표 분식집이다. 이곳의 여주인은 수십 년 간 장사를 해와 30~50대 여성층까지 단골을 갖고 있는 파워음식점이다. 이와 함께 영화시장 주변에는 영화방앗간 등 다양한 가게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영화동 시장이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는 날이면, 짧은 쉬는 시간에도/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달려가 우리가 주로 찾는 메뉴는/ 빨간 고추장으로 버무린 매콤매콤한 떡볶이었다. 거기다가 구수한 어묵 국물까지 곁들이면/ 이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우리가 자주 찾은 가게는 '안젤라 분식'이었다. 안젤라가 세례명인 천주교 신자인 아주머니는/ 후덕하게 생긴 몸매에 단골들의 이름까지도 잘 기억을 해주어 우리를 감동케 해 주었다. 중략/ 중략 추억의 자리를 지켜 주신 아주머니 덕분에 영화동에 가면, 분식점 탁자위에 앉아 있는 단발머리에 새라복을 입은/ 소녀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인다. 중략/ 중략 나는 서슴없이 영화동 시장엘 가서/ 떡볶이를 함께 먹고 싶다. - 노서운 수필집 ]영화동 떡볶이]중에서 또 구영5길은 김내과의원, 하나로약국, 홍콩양장점, 동인타일총판, 군산기독외국어학원, 장외과, 구화당 한약방, 뽀빠이 감자탕 등을 거치면 구형 7길의 중심에 옛 군산시청이 있다. 지금도 장외과와 뽀빠이 음식점 주변 벽에는 '까치만화'상호가 옛 담장에 붙어 있어 70․80년대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이 밖에도 구영6~7길 주변에는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정초밥과 경산옥은 초밥과 각종 생선탕에 관한한 맛이 대단해 오랜 단골과 한번 다녀간 미식가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할 정도다. 조선과 근․현대 최고의 영화동 거리 오늘날 군산의 원형은 조선시대 군산진과 군산창을 중심으로 한 중앙로, 영화동, 월명동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원도심이다. 조선과 개항 이후 근대, 해방이후 등으로 군산의 특징을 지울 수 있다. 특히 영화동은 조선시대에는 구영리와 강변리라고 부르는 촌락들이 있었던 곳이다. 구영리는 오늘날 구영1~7길까지 이름을 딴 군산시민들에게는 고향과 같은 존재다. 당시 군산창과 금강입구를 지키던 조선의 수군부대 주둔지인 군산진과 접하고 있어 이곳의 사령 및 군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하지만 개항과 함께 군산의 원형은 크게 변화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일본의 식민지 교두보로 전락한다. 인천, 군산, 마산 등 서남해안의 항구를 개항하면서 일제는 호남의 평야의 최대 해창이 있었던 군산에 마수를 뻗친다. 금강의 입구에 있을 뿐 아니라 내륙교통의 요지인 당시 군산포는 조선시대 조운창고와 수군기지가 있는 곳이어서 일제의 침략야욕의 1번지가 된다. 개항된 조계지역 총면적은 57만2000㎡(17만3000여평) 중 중앙에 위치한 대부분의 지역이 영화동이었다. 즉 구영리와 강변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대거 조계지 밖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일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영화동거리에는 일본식 2층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는데 이들 건물들 중 일부가 오늘에 이르고 있고 일부는 도시화되면서 사라진 것이다. 현재의 김이빈후과에서 과거의 코렉스마트에 이르는 곳이 전주통으로 당시 최고의 상업 및 행정 중심지였다. 해방 후 군산에 진주한 미군과 미군 군정청 관리들이 군산초등학교를 숙소로 이용됐고 일부는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유흥주점 등이 무수히 들어섰다. 또 영어와 외래어로 된 간판들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당시 생필품이 부족한 군산에는 많은 양복점과 미군 PX에서 나온 각종 물품들을 판매하는 수입품 상점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동은 한국전쟁을 거쳐 60년대 들어서 행정중심지로 우뚝 섰고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지만 유흥업소 집단이주에 이어 시청과 법조건물 등 행정타운이 조촌동으로 이전하면서 쇠락을 거듭해왔다. <정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