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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세월 담은 소리의 장인(匠人)

군산국악원의 부원장이자 명창인 육금자 씨(64)는 평생을 국악에 매진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15-07-15 16:36:09 2015.07.15 16:36:09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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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도장을 만드는 장인, 한국화 장인 등 여러 분야의 장인이 있다. 장인이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해 그 일에 통달하려고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의 자부심과 투철한 직업정신을 장인정신이라 한다. 이런 중 월명주민센터 맞은편에는 67년간 국악의 내공을 켜켜이 쌓아오며 입지를 다져 온 ‘군산국악원’이 있다. 이곳의 부원장이자 명창인 육금자 씨는 평생을 국악에 매진하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그녀의 판소리 인생은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 고향이 장수군 산서면인 그녀는 가족들과 군산으로 내려와 6세 때 모친을 따라 판소리와 무용 연습을 시작했다. “모친은 제 재주를 발견하고 어릴적부터 국악을 시키셨어요. 당시 무용, 판소리, 북 등의 국악을 두루 섭렵했죠” 그녀는 모친의 뜻에 따라 국악 연습에 매진해왔지만 20대 초반 슬럼프를 맞았다. “결혼 후 생계를 위해 공사판 페인트칠 등 안해본 거 없이 살다가 과로 때문인지 갑자기 열이 펄펄 끓었어요. 거의 1년간 앓아누우면서 소리를 접을 생각도 했었어요. 그러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정신차린 뒤 다시 소리를 시작했어요” 재기 후 육씨는 국악계에 다시 입문해 ‘제 2의 인생’을 펼쳤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그녀 역시 아픈 뒤 활동에 더욱 전념했다. 40대 초반에는 여러 차례의 해외공연을 통해 외국에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한국의 전통 소리를 널리 알리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신념이 생기니 활동도 재미있어졌다. 이후 그녀는 군산문화원 주관으로 일본 후쿠오카에서 문화교류공연 실시를 비롯해 LA, 샌프란시스코, 타코마 공연, 중국 연태시 자매결연공연 등을 오고갔다. 육씨는 50대 초까지 숱한 공연을 통해 전국을 돌며 국악 알리미로 종횡무진 활동하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수상 경력도 빼곡하다. 그녀는 2004 세종문화회관 ‘제3회 세계문화예술대상 시상식’ 대상, 제10회 ‘김제지평선국악제’ 문화체육부장관상인 종합대상, 2007년과 2008년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1등에게 수여되는 종합대상 등을 수여받았다. 이외에도 여러 관련부처, 단체장으로부터 지도자상을 비롯, 감사패와 상장을 받아왔다. 현재는 군산국악원에서 미래 국악인을 키우고 있다. 육금자 씨는 “국악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국악원에서 육씨의 가르침을 전수받는 제자들은 한 손에 가사를 적은 대본을 들고 소리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도 병행한다. 전통을 계승하고자 전국 학생 국악 경연 대회 및 국악 강좌도 꾸준히 개최중이다. 그녀는 ‘제 3의 인생’을 열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국악이 점점 사라져가고 K-POP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악은 한복, 비텨, 풍물패처럼 ‘옛 것’으로 잊혀져가는 모양새다. 국악전승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계속하는 그녀는 지금도 군산국악원 식구들과 군산지역 전통 문화예술을 창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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