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민살풀이(수건 없이 추는 살풀이춤) 전승자 장금도(張錦桃) 명인의 춤 세계를 재조명하는 행사가 26일 오후 4시 장미공연장과 미즈커피에서 열린다. ‘마지막 예기 장금도의 춤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장금도 명인의 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추진 사업의 하나로 (사)군산예총(회장 황대욱)이 주최하고 매거진군산(대표 이진우)이 주관한다. 장미공연장 공연은 1999년부터 장금도 명인과 사제의 연을 맺어 온 신명숙(57) 대진대학교 교수의 초청공연과 장금도의 일생을 조명한 동영상 상영, 즉석 토론회가 진행된다. 미즈커피에서는 장금도의 발자취와 일제강점기 권번 관련 사진 30~40점이 3월 26일부터 4월 25일까지 1달간 전시된다. 군산의 마지막 예기 장금도 군산 소화권번(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을 졸업한 이 시대의 마지막 예기(藝妓) 장금도 명인. 장금도(89)는 1928년(호적 1929년) 지금의 군산시 중앙로 2가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군산 소화권번(4년제)에 들어가 회초리를 맞아가며 예의범절과 가무(歌舞)를 익혔다. 장명인은 최창윤에게 승무, 김백룡에게 부채춤, 도금선에게 민살풀이를 전수받아 열다섯에 군산극장에서 초연(初演)했고, 군산 명월관 무대에서 치러진 예기 자격시험에서 소리(唱)와 춤 모두 수석으로 졸업한다. 어린 나이에 가무(歌舞)로 군산 지역을 주름잡았던 장금 명인은 일제의 '처녀공출'(일본군 위안부)을 피해 열일곱에 결혼하면서 활동을 접었다가 광복 후 재개한다. 서울에서도 활동했던 그는 스물아홉에 소리와 춤을 작파하고 집에서 숨어 지낸다. 울타리에 갇혔던 민살풀이는 정범태 사진작가의 집요한 추적과 설득으로 장금도가 1983년 국립극장 ‘명무전’에 초대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 후 간간이 중앙 무대에 오르면서 해외 초청공연도 다녀온다. 장금도 명인의 대표작으로는 '한국인의 넋이 담긴 민족의 춤' 명인전(1990), 제1회 서울세계무용축제 명무 초청(1998), 내일을 여는 춤-우리 춤 뿌리 찾기(2002),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2004), 여무(女舞) '허공에 그린 세월'(2004),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특별출연(2005), 제8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초청 '전무후무'(2005), '전무후무' 프랑스 초청공연(2006), '춤'-이 땅의 숨은 춤-(2011), 작별의 춤 해어화(2013) 등을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