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동 가옥은 일본인 저택…광복 후 시장 거주 최근 부윤관사 위치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관사 위치가 현 신흥교회 자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동안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된 적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자료까지 제시된 적은 이례적이다. (사)군산역사문화연구원 이복웅 원장은 1928년 작성된 군산부도(附圖) 등 다수 지도에 표기된 부윤관사의 위치는 수덕산 동남쪽 2부 능선에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군산시가전도(1920·사진)와 군산행정지도(1923), 군산부 전도(1933), 군산부세개요(1935)에도 부윤관사를 금정(錦町) 군산공회당이 있었던 수덕산 아래 능선에 표시했다. 1928년 군산부청이 이성당 옆으로 신축된 이후 부윤관사는 이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부윤관사로 알려졌던 월명동 22-2번지 일본식 가옥은 군산에서 농장을 소유하며 무역업, 정미소, 정미업, 석유, 보험회사, 상점을 운영한 삼국오랑(森菊五郞)의 차남 삼국준삼(森菊俊三)의 저택이었다고 주장했다. 폐쇄 등기부에 명시된 월명동 건물은 1911년 9월 전주면 화원정에 주소를 둔 지숙안복(指宿安福)의 개인 소유로 1917년 대판산성 직원 겸 군산 수로 안내원인 뇌호산전장이 매수했다. 1943년 그의 아들 뇌호산철천에게 상속됐고, 곧바로 삼국준삼이 매입했다. 1945년 광복 직후 적산가옥으로 접수된 일본식가옥은 1948년 9월 13일 시 소유재산으로 등록됐다. 이후 1949년 8월 14일까지 일본식 행정명칭인 군산부(府)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8월 15일부터 지방행정조직법 제32호에 의해 군산시(市)로 승격됐다. 이 기간동안 행정법상 군산부의 수장은 ‘군산부윤’이라 칭했다. 이곳에 군산시장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 초대시장 김용철 씨라고 추측되는 상황이다. 이 원장은 “한국인 군산부윤(실제로는 군산 시장)의 관사로 잠시 사용한 것을 두고 현재까지 일부에서 잘못된 장소를 부윤관사로 혼동하고 있다”며 “실제 일본인 부윤이 살고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광복 직후부터 1949년 시(市)로 개청하기 전까지 군산부라는 일본식 행정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왔다”면서 “부윤이 아닌 시장 관사라는 표현이 맞는 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