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섭 목사(오른쪽)과 박경이 사모> 군산시는 최근 한국 현대사 연구에 있어 큰 도움이 될 한국전쟁 유물 기증식을 개최했다. 바로 한국전쟁 참전미군이 소장한 태극기와 블러드 칫(Blood Chit). 기증자인 군산영광교회 담임목사 임용섭(55․한세대 교수) , 박경이(54) 부부가 미국 유학 시절 알게 된 참전용사에게 전해 받은 것으로 자료조사, 유물정비, 사진 및 구술 자료를 토대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참전용사와의 인연은 20여년 전 미국 시카고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탁구를 즐겨 하던 임 목사는 동네 주민센터에서 은퇴한 미국의 어르신들과 탁구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평소 (탁구)경기를 구경만 하던 한 어르신이 임 목사를 보고 말을 걸었다. “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일세, 이제 죽을 때가 가까워 내 주변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네. 자네가 이 물건의 적임자일 것 같아 이렇게 주게 됐네. 이 물건들은 내가 전쟁터에서 지니고 있던 것일세…” 이윽고 낡은 태극기와 천 조각을 임 목사에게 건넸다. 손때가 가득 묻은 태극기에 그려진 문양과 색깔은 미국인이 급하게 만든 듯 우리나라 국기(國旗)의 모양과는 달랐다. 어르신은 “자식들에게 물려 주고 싶지만 한국 전쟁은커녕 한국이라는 나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아이들은 이 태극기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라며 “태극기의 의미를 알고 소중하게 간직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인을 만나 기쁘다”고 했다. 한국학교 교사로 일했던 박경이씨는 한인 2세들에게 태극기를 시청각 자료로 활용했다. 하지만 한국에 귀국한 후 태극기는 오랫 동안 묵혀두게 됐다. 그러다 임 목사 내외는 지난 2016년 군산에 오게 됐고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들렀다. ‘전시 가치가 있다면 이곳에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에 군산시 관계자와 잘 아는 교회 신도 부부에게 유물 두 점을 건넸고, 검증을 시작했다. <블러드 칫(Blood Chit)>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약 한달 간 기증유물에 대해 본격적인 자료조사와 유물정비를 추진했으며 당시 사진자료와 임용섭 목사 내외의 구술 자료를 토대로 분석을 진행했다. 태극기에는 1950년 7월 6일부터 10월 20일까지 한국전쟁에 파견된 미군들의 기록이 담겨있다.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 초기 부산에 파견된 미군 24사단 소속으로 추정되며 총 35명(미군 32명, 한국군 3명)의 서명이 온전히 기록돼 있다. 특히 낙동강 방어전선 전투부터 인천상륙작전, 개성 북진 후 중공군이 내려오기 전까지의 이동경로 및 활동이 분석 돼 있었고, 평화의 지역(Peas Section), 승리(Victory) 등의 문구도 함께 적혀 있었다. 함께 기증된 생환도움요청문인 블러드칫(Blood Chit)은 전쟁에 참여한 미군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생명의 안전 보장과 미군부대로의 인도를 요청하는 표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중 낙오되거나 생포될 경우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간직된 것으로 국내에 몇 개 없는 희귀한 전쟁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증된 유물은 보존처리 후 근대역사박물관 2층 기증자 전시실에서 선보일 예정이며, 유물에 대한 소개는 물론 일반인들이 당시 한국전쟁의 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진자료 등의 콘텐츠도 함께 제공된다. 박경이 사모는 “미국인 할아버지의 뜻 있는 유물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감사하다”며 “할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건넨 태극기가 한국인들에게 소중한 유물로 남게 됐다고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용섭 담임목사는 “미국 시카고 유학 당시 한국전쟁 참전 미군으로부터 의미 있는 태극기를 소중히 간직해 달라고 부탁받았다”며 “수탈과 저항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에서 가치 있게 전시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기증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물관 관계자는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의 파견지역과 그들의 이름 등이 확인돼 한국 현대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기증된 유물의 고증과 복원작업을 진행해 다양한 전시유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