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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만나는 ‘100년 전 그 날’

한강이남 최초 만세운동 ‘군산3.5만세운동’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19-03-08 11:50:14 2019.03.08 11:50:14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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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3.1운동과 관련 다양한 기념행사가 개최됐으며,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강이남 최초 만세운동 ‘3.5만세운동’이 열렸던 군산에서는 풍성하고 다양한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군산시, 다양한 3.1운동 기념행사 마련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군산시는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번 기념식은 지난해 6월 개관한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에서 처음으로 개최돼 100주년을 맞는 의미가 남달랐다. 더욱이 군산은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한강 이남과 호남 최초로 만세운동(3.5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역사를 가진 지역이기 때문에 특별함이 배가 됐다.

기념식에 앞서 구암교회-군산경찰서-세풍아파트 삼거리로 이어지는 평화시민대행진이 있은 후, 극단 둥당애 단원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3.5만세운동 재현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재현행사가 끝난 뒤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에서 지곡초 학생들의 ‘그 날의 함성’ 연극이 식전공연으로 시연됐고, 기념식은 강임준 시장, 김관영 국회의원, 김경구 군산시의장 등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독립선언문 낭독, 3.5만세운동 약사보고, 광복회・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감사패 전달, 기념사, 3.1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3.5만세운동에서 큰 역할을 했던 김병수 선생의 후손이 감사패를 받는 등 기념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기념식에 참석한 강임준 군산시장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로 한강이남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지역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선열들이 보여줬던 희생과 화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시민이 하나로 결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백나무 식수 행사까지 마무리된 뒤, 구 시청 광장에서는 100년 전 그 날의 함성을 재현하고 화합과 평화의 의미를 다지는 ‘만북울림 문화행사’가 진행됐다.

‘만북울림 문화행사’에는 군산시민 연합 풍물패와 드럼, 난타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이 진행됐고, 많은 시민이 북, 소고, 패트병 등 두드릴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두드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진흥풍물단의 이선원 씨(57)는 “매년 행사에 참여하고 있지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행사라 더 뜻 깊고 의미가 남다르다”며 “광장에 많은 시민이 참여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니 100년 전 그 날에 와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로 지난 1일과 2일, 8일과 9일에 발달장애인대안학교(산돌학교)에서 연극공연이 열리며, 14일에는 시립예술단의 합동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또한 23일까지 구암교회에서 역사 사진전이 열리며, 23일에는 관내 초등학생이 참여하는 3.1운동 관련 백일장과 미술대회가 3.1운동100주년기념관 광장에서 개최된다.

 



◇한강이남 최초 만세운동 ‘3.5만세운동’

군산 구암동산에서 발원돼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3.5만세운동은 한강이남 최초 만세운동이자 호남 최초로 전북지역 최다수의 순국자가 발생한 운동이다.

특히 군산은 전라도 일대 물자 수탈 무역항구로 활용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급속도로 성장한 지역으로, 우리 고장에서 생산된 쌀 반출량이 상당해 일본에 대한 감정이 더 좋지 않아 3.5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3.5만세운동은 김병수(당시 세브란스의전 학생, 영명학교(현 제일중고) 졸업)가 1919년 2월 26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매를 전달받아 군산 영명학교 스승인 박연세, 이두열에게 1919년 2월 28일에 전달함으로써 구체적인 거사가 시작됐다.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3,500매) 복사와 태극기(수백장)을 그리고 만드는 작업을 비밀리에 착수해 3월 6일 서래장날을 기해 전개하되, 영명학교 교직원, 학생, 구암병원 사무원, 신자들과 일반 시민까지 참가 확대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전모임의 결의와 준비로 3월 4일까지 거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했지만, 돌연 3월 4일 새벽 군산경찰서의 일본인 무장경찰 수십 명이 출동해 주도자인 박연세, 이두열, 김수영, 고석주, 송정헌 등을 구인(拘引)하는 바람에 사전 발각됨으로 좌절될 뻔 했다.

하지만 김윤실 교사를 중심으로 격분한 학생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3월 4일에 잡혀간 교사들의 석방을 위한 시위가 첫 만세 시위운동이 됐고, 일본 경찰이 1차 학생시위를 진압하고, 주도자를 유치한 후, 방심하는 사이 3월 4일의 만세 시위 진압이 자극제가 돼 만세시위는 더욱 열렬히 1919년 3월 5일에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그 규모는 컸었다.

주로 학생들에 의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가 배부됐고, 체포를 면한 기독교 학교인 영명 남학교, 멜본딘 여학교 교사와 학생, 구암 예수병원 사무원, 구암교회 교인 등이 합세, 백여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시민까지 포함해 50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성난 노도와 같이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 계속됐다.

3.5만세운동은 28회(30,700여명 참여, 사망 53명, 실종 72명, 피해인원 195명)로 큰 상처를 남겼지만, 외세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호국정신이 투철하였음을 널리 알린 호남지역 3.1운동의 불씨가 된 거사다.

이와 관련해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관계자는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이 지난해 생겼지만 교통편도 불편하고 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 찾아오는 군산 시민을 비롯해 관광객이 많지 않다”며 “우리 지역은 한강이남 최초 만세운동인 ‘3.5만세운동’이 열린 지역으로 시민이 자부심을 가지고 기념관에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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