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대자연속을 달리는 사자, 기린 등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동물의 왕국’ 이미지와 함께 흙탕물을 마시며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이 떠올려지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곳에서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봉사단원들의 도전과 헌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아이들과 지냈던 추억들을 예술작품으로 풀어낸 작가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작품전시가 많이 늦어졌지만, 마음이 고단하고 수고한 분들이 잠시 숨 고르고, 그림 너머 이야기를 읽으며 쉬어갔으면 한다. 누구나 고단했던 한해,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며 이런 전시를 열 수 있는 한국에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배수정(51) 작가의 말이다.
최근 근대역사박물관 분관인 장미갤러리 2층 전시관에서 서양화가 배수정 작가의 ‘아프리카 그림일기’ 전이 열려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전시된 작품들은 유화와 아크릴의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 화려하고 비비드한 컬러를 사용해 어린아이 같은 느낌으로 아프리카를 표현했다. 또한 아프리카 케냐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와 사진, 특히 배 작가의 딸 양시우(25) 양의 4컷 만화가 함께 전시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4컷 만화는 위트 있고 센스 있는 글과 그림으로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일상들을 무심하게 그려내, ‘아프리카 그림일기’ 전을 보러온 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줬다. 이를 통해 작품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지구촌 너머 아프리카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는 관람객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배 작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1년간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순간들을 적어간 12장의 일기를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면서 “타국에 있는 동안 한국에 있는 지인들께 소식을 전하는 방법으로 일기편지를 보냈는데, 이색적이며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고 글과 그림, 만화가 있는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딸의 4컷 만화가 내 작품보다 반응이 더 좋다. 딸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시너지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면서 자신과 많이 닮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딸 시우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이어 “매일 썼던 일기와 사진들이 이대로 사장되기는 아쉬운 마음에 5권의 책으로 출판해 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 작가의 작품 중 ‘폭풍속의 길’, ‘I`m happy’, ‘봄바람’ 세 작품은 한쪽이 난청인 본인의 장애를 표현해, 점점 행복해져가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으로 “얼굴이 너무 커서 대갈공주라는 애칭이 있다”고 살짝 귀띔하며 웃었다.
또한 ‘현상수배’ 그림을 보며 “아이들이 뭐든 훔쳐 가는 바람에 난처했던 상황들이 많았다”면서 “‘르네 마그리트 화가의 데페이즈망 기법(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함께 있는)’으로 흑인아이가 빨간 마스크를 쓰고 여러 개의 팔로 물건을 훔쳐가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벼룩에 심하게 물려 휴식을 취하던 중 마셨던 케냐 커피에 흠뻑 취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린 ‘휴식’은 그림 속에 글을 써 넣은 그래피티아트 기법 등으로 표현하고 ▲‘검은대륙의 갈증’은 케냐에서 실제 사용한 수도꼭지를 레디메이드(기성품을 작품화)한 것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갈증을 나타냈다. 또한 ▲학교에서 다친 발을 자신이 있는 곳에서 치료받고, 높은 뒷산을 넘어 집으로 가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그린 ‘집으로 가는 길’ 등 케냐의 기후와 환경 그리고 그곳 아이들을 통해 느낀 감정들이 깃든 작품들을 전시했다.
특히 배 작가가 가장 애착하는 작품인 ‘Africa load, LORD'’는 기독교 신앙이 녹아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미 판매 완료됐다. 이 그림은 “정결, 성결을 의미하는 붉은 색을 비롯한 형형색색으로 아프리카 건물를 그대로 표현하고, 번창의 의미를 가진 불을 형상화해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배 작가는 지난 2016년 딸 시우와 함께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조이홈스 고아원’을 찾아 미술 수업과 벽화그리기 봉사 등 볼런투어리즘(일손을 돕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자신의 전공에 대한 각종 기술을 알려주는 것 등의 봉사)을 떠났다. 딸 시우는 컴퓨터와 피아노 등 음악수업을 현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배 작가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 나가며 현지생활에 적응해나갔다.
배수정 작가는 “‘하쿠나 마타타’는 ‘걱정하지 마. 뭐든지 다 잘 될 거야.’라는 뜻을 가진 스와힐리어로 그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지만,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그곳에서 나는 내 안의 욕심을 버렸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귀 보다는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법을 배웠고, 시나브로 인종차별 없는 세상에 다가가는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1년여 생활 동안 페인트칠과 손빨래 등 궂은일을 하며 안 그래도 거칠었던 손이 나무껍질 손이 돼버렸다“면서 그러한 손이 예쁘다고 환하게 웃었다.
한편 배수정 작가는 군산대 미술학과, 대학원 조형예술 디자인학부 석사(서양화 전공)를 졸업하고, 현재 군산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강의하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낸 바 있으며,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특별상, 전라북도 미술대전 특선 등 다수의 수상경력과 여러 전시회에 참여했다.<유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