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오후 개정면 발산리 월령마을 최호장군 유적지내 진남정(사백 신성휴). 우리 고유의 전통무예인 국궁을 즐길 수 있는 이곳에 10명의 사원들이 바람을 뚫고 145m 거리의 과녁에 활을 쏘고 있었다.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진행된 활쏘기의 모습에서 우리 민족 형성 과정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 우리활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일시여금(一矢如金 : 화살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라는 뜻)의 자세로 한 시(矢) 한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원들의 진지함속에서 우리 민족이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불리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듯 하다. 군산 유일의 국궁장 ‘진남정(鎭南亭)’에는 오랜 세월 동안 활을 갈고 닦아서 전해준 조상들에 대한 예의이자 보답이 잘 묻어나 있다. 현재 전국 활터에서 사용하고 있는 우리 활 각궁은 부린 활의 길이가 4척2촌(약 127cm)이고, 얹은 활의 길이는 3척5촌(약 105cm)내외다. 길이가 2m가 넘는 일본 활에 비교할 때 단궁인 우리 활의 사거리는 오히려 장궁(長弓)인 일본 활보다 길고, 전쟁무기로서의 성능은 감히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했다. 우리 활은 고조선의 목궁시대에서부터 짧으면서 강한 것이 특징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윤백일 사원은 “우리 활의 성능과 우수성은 가히 세계 최고라 자부할 만하다”며 “이젠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국궁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진남정은 강경 덕유정, 황등 건덕정, 익산 송백정, 김제 홍심정, 부안 심고정, 정읍 필야정과 함께 호남칠정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신성휴 사백을 필두로 45명의 회원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우리 전통의 활 활성화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짧지 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늘날 진남정의 존재 자체조차 아는 이가 많지 않아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주연대 관리이사는 “군산시민의 활터인 진남정에 보다 많은 지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 주셔서 5000년 동안 살아 숨 쉬는 전통인 우리 활의 멋과 맛을 함께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현 진남정은 군산시의 협력으로 개정면 발산리 월령마을 최호장군 유적지내의 1400여평의 대지에 120여평 규모의 2층 건물로 전통과 현대식의 절충형으로 지어졌다. 이때부터 진남정 재도약의 큰 분수령이 됐다. 이전의 진남정은 1921년 이 고장의 유림, 유지와 한량들의 발기로 현 경암동인 옥구군 경포천변에서부터 시작됐지만 하천이 자주 범람해 1928년 월명동 32-5번지, 월명공원 중턱에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활터 주변에 생겨난 민가들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3년 7월 오식도 배수지 내에 임시사정을 설치해 진남정의 명맥을 이어갔다. 군산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월명공원 내의 진남정은 사실상 활터로써의 기능을 다하게 된 것. 이 무렵 군산교도소에 근무하는 국궁동아리 회원들은 진남정의 활터 이전에 그동안 전력을 기울여왔던 군산시 궁도협회 회장겸 진남정의 사백인 신성휴 회장과 함께 진남정 복원 운동에 전력을 다했고 그러한 노력은 진남정 부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2005년 10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 풍전등화의 시기에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했던 최호장군의 호국의지가 서린 개정면 발산리 유적지에 현 진남정 건물을 짓게 된 것이다. 신성휴 사백은 “이곳 진남정에서 단절되었던 기록문화의 전통을 유지시키고 신구세대가 조화해 올바른 진남정 문화를 창조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2004년 8월부터 인터넷 공간에 ‘군산 진남정’ 카페를 개설해 운영 중에 있으며 지난해 도민체전을 비롯해 호남 7정대회 등 각종 경기를 진남정에서 개최해 우리 고장 국궁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