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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명수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

‘2아웃 투 스트라이크 노볼’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군산상고 3번 타자 김준환(현 원광대 감독)이 극적인 좌전안타를 때리자 2루 주자가 홈으로 내달린다. 세이프.

군산신문(1004gunsan@naver.com)2013-09-27 10:26:33 2013.09.27 10:26:33 링크 인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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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아웃 투 스트라이크 노볼’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군산상고 3번 타자 김준환(현 원광대 감독)이 극적인 좌전안타를 때리자 2루 주자가 홈으로 내달린다. 세이프.   싱겁게 끝날 것 같은 경기가 9회말 마지막회에 4대 1에서 5대 4로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1972년 뜨거웠던 여름. 우리나라 야구 역사상 가장 잊지 못할 명장면이 연출된다   제26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신생팀 군산상고가 강호 부산고를 만나 9회말 대역전극을 펼친 것이다.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운동장을 찾은 3만여 관중은 물론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난리가 났다.   당시 언론들은 “야구사상 일찍이 보기 드문 기사회생의 산표본”이라며 군산상고의 투혼을 극찬했다.   그날 이후 군산상고는 자타가 공인하는 ‘역전의 명수’가 됐다. 그리고 이 승리의 기쁨은 야구 변방이었던 군산과 전라북도에도 엄청난 활기를 불기 시작했다.   당시 우승 카퍼레이드가 군산뿐만 아니라 전주, 익산 등에서도 진행됐고, 군산의 경우 12만명의 인구 중 7만여명이 거리로 뛰어나올 정도로 실로 엄청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통의 강호 군산상고 이야기는 이 전설의 명경기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우승으로 단번에 신흥강자로 떠오른 군산상고는 이후 전국무대를 평정했다. 또한 숱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특히 군산상고의 '역전 스토리'는 정인엽 감독에 의해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라는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중반까지 군산상고 인기는 한마디로 전국구였던 것.   군산상고 야구부의 탄생은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군산 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이용일(당시 경성고무 사장)씨가 선수들이 먹을 쌀을 직접 손수레에 실어 나르는 정성으로 군산상고 야구부를 창단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군산중 1학년을 마치고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야구선수로 활약하다 1956년 고향에 내려왔으며, 경성고무에서 근무하면서 초중고 6개 야구팀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62년 2월 군산초교, 남초교, 중앙초교, 금광초교 야구팀이 창단됐고 이어 이들 선수들이 진학할 군산중(1964년), 군산남중․군산상고(1968년) 야구부가 각각 만들어져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당시 군산상고 김병문 교장이 건물 한 동을 지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합숙소로 사용하게 했고, 이용일씨도 선수들이 먹는 쌀을 회사 직영 정미소에서 필요한대로 보내는 주는 등 물신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상고 야구부는 초대 감독 최동현과 2대 감독 서창활에 이어 국가대표 투수 출신인 최관수 감독이 부임하면서 군산의 야구열기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최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끌었고, 창단 3년만인 1971년 전국체전에서 최초 우승을 일구며 호남야구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유명한 일화로 추석명절 때 집에 가지 못하고 훈련을 계속하던 선수들이 술을 몰래 마시고 난동을 부리자 최 감독이 선수들을 모아두고 "내 잘못이니 나를 때리라"며 선수들에게 방망이를 쥐어진 이야기는 동문들 사이에서도 전설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 때 감독을 때린 선수들은 이 사건의 계기로 '끈기와 근성'으로 1971년 전국체전 정상에 오르게 된다.   군산상고는 이 전국 체육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청룡기 2회, 황금사자기 3회, 봉황기 3회, 대통령배 3회, 전국체전 5회 등 지금까지 우승 16회, 준우승 10회, 3위 7회 등 고교야구에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과거 역전의 명수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고교야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던 군산상고는 지난 2000년대 이후 급속히 쇠락해 지역 야구인과 시민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군산상고는 1999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10년 넘게 전국대회에서 단 한 번의 우승은커녕 감독만 수차례 바뀌는 침체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난 9월15일. 군산상고가 마침내 긴 침묵을 깨고 새 역사를 썼다.   제 41회 봉황대기 전국고교 야구대회 결승전에서 마산고를 20대 4로 대파하고 초록 봉황을 품에 안은 것이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전통강호로서 위상도, 자존심도 되찾았다.   시민들은 “군산상고가 이번 봉황대기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인 만큼 앞으로도 전통강호로서 더욱 지역을 빛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군산시는 지난 17일 오후 시청 광장과 시내 일원에서 통상 3번째로 봉황대기 우승을 차지한 군산상고 코치와 선수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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